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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대원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3집
발행연도
2009.8
수록면
265 - 30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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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수립ㆍ선포된 임시정부 가운데 대한공화국 임시정부는 미주 한인사회에서만 존재한 임시정부로서 노령 내지 간도에서 조직된 임시정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대한공화국임시정부는 1919년 3월 29일 상해의 현순이 하와이 국민회에 보낸 ‘착오’의 영문전보에서 비롯된 실체가 없는 정부였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현순의 ‘착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 ‘착오’란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미주에서 대한공화국임시정부가 어떻게 상당기간 유일한 임시정부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본 논문은 이런 의문의 실체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현순이 착오로 미주 한인사회에 전한 임시정부는, 1919년 3월 말경 상해에 온 이봉수가 현순에게 秘傳한 임시정부안이었다. 천도교도이자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연락관계 일을 하던 이봉수는 그 무렵 신한민국정부의 조직주체인 경성독립단본부 단원이기도 했다. 그는 3ㆍ1운동 이후를 대비하여 천도교 측에서 조직 중이던 대통령제 임시정부안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경성독립단본부에서 논의 내지 구상 중이던 임시정부안을 더한 예상안을 현순에게 비전했던 것이다. 현순은 3월 말경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문제가 구체화되자 이봉수가 비전한 임시정부안을 미주 한인사회에 통신하여 기정사실화하려고 했다. 4월 11일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현순은 곧바로 이전에 보낸 자신의 전보가 ‘착오’였음을 통신했다. 그러나 대한공화국임시정부의 국무경 행세를 하고 있던 이승만이 『新韓民報』에 공개하는 것을 비밀에 부침으로써 대한공화국임 시정부는 유일정부로서 계속 존립하게 되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대한공화국임시정부를 둘러싼 혼란은 정확한 정보의 부재와 함께 무엇보다도 ‘착오’ 사실을 은폐한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 여기에다 위임통치 문제로 불안해하던 이승만이 1919년 5월 말경한성정부 관련 문건을 입수하고 6월 14일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 내지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서면서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두 개의 임시정부가 존재하는 정치적 혼란과 함께 상해임정과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대한공화국임시정부와 현순의 ‘착오’
3. 현순에게 ‘秘傳’된 임시정부의 실체
4. ‘착오’의 결과와 그 원인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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