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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공석구 (한밭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9輯
발행연도
2011.3
수록면
47 - 7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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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비』의 수묘인연호관련 기사를 장수왕대와 광개토왕이전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본고는 이중에서 광개토왕이전에 해당되는 내용을 검토하였다. 광개토왕은 선대의 왕릉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이 문제가 장차 자신의 무덤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임을 염려하였다. 광개토왕은 선대 왕릉관리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고 이를 타개하려고 실행에 옮겼다. 광개토왕의 걱정은 수묘인이 점차 감소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책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先代王陵의 수묘에 착오가 생겨나 수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였다. 그 이유는 선대의 왕릉에 비석이 없어 수묘인에 섞갈림 현상이 있었다고 파악하였다. 이에 광개토왕은 祖先王의 릉에 모두 비석을 세우고 수묘인을 기록함으로서 착오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였다. 여기서 조선왕의 범위를 미천왕릉, 고국원왕릉, 소수림왕릉, 고국양왕릉으로 이해하였다. 둘째, 수묘인의 매매, 전매가 횡행하여 수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파악하였다. 그 배경은 직접수묘인 이외에 결원을 대비한 예비수묘인에 있었다. 예비수묘인이 매매, 전매의 대상이 되다보니 수묘역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광개토왕은 수묘인의 전매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실행에 옮겼다. ‘앞으로는 수묘인을 전매할 수 없다’는 것을‘令’의 형태로서 제도화하였고, 또한 수묘인을 사들인 자에 대한 형벌조항도‘令’의 형태로 제정하였다. 하지만 광개토왕은 이와 같은 조치들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광개토왕이 선택한 것은 수묘인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었다. 광개토왕은 자신이 몸소 출정하여 빼앗아 온 韓穢人에게 자신의 무덤관리를 맡길 것을 아들(장수왕)에게 부탁하였다. 하지만 장수왕은 이와 같은 광개토왕의 부탁을 그대로 이행하지는 못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 왕릉의 축조
Ⅲ. 고국양왕 이전의 왕릉관리
Ⅳ. 광개토왕의 고구려 왕릉관리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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