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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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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3호
발행연도
2006.5
수록면
309 - 34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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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발해문물교류의 양상을 인적 왕래, 물품교류, 지식ㆍ정보의 교류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성과에서는 唐의 멸망에 의하여 동아시아의 교역권이 형성되거나, ‘國風文化’ 등의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민족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교역권의 단초는 9세기 나아가 8세기 초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즉 朝貢이라는 형식을 매개로 하여 활발한 교류가 동아시아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발해는 신라와 함께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전개와 발전에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위에서 살펴본 사람ㆍ물품ㆍ지식의 교류는 바로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발해의 문물교류를 세가지 점에서 고찰해 보았다. 첫째는 사람의 교류이다. 이는 唐과 일본에 파견되었던 공식 사절단과 수령, 민간 상인, 승려 등이었다. 둘째는 물자의 교류이다. 발해가 외국에 수출한 대표적인 물품인 모피, 渤海三彩, 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발해의 수출품이 1차산품에 머물지 않고, 우수한 수공업재품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말은 발해멸망 이후에도 중국 남부지역이나 일본 동북지방에까지 수출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셋째는 지식ㆍ기술의 전래이다. 발해가 외국 특히 일본에 전한 대표적인 것은 竪形爐에 의한 철생산기술, 宣明曆經, 密敎經典 등을 들 수 있었다.
발해가 8~10세기 동아시아의 교류에서 했던 가장 큰 역할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완성 내지 완결을 이루었다는 점 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전형적인 예는 공식사절단과 민간상인에 의해 전개된 公私교류와 그것을 통해 전해진 물품, 지식 등을 통해 증명이 되지 않나 생각된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사람의 교류
3. 물자의 교류
4. 기술ㆍ지식의 교류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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