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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자 (문화재청) 박형순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4號
발행연도
2010.8
수록면
291 - 321 (31page)
DOI
10.14769/jkaahe.2010.08.2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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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국가를 운영하는데 사용된 그릇(器皿)은 용도에 따라 내용(內用: 王室用) 및 국용(國用)으로 구분할 수 있다. 內用은 국왕과 궁궐 안에 거주하는 왕실(王室) 구성원의 일상생활에 소용되는 것이고, 國用은 국왕과 왕실 및 궁궐 안팎에 위치한 여러 관사(京中各司)의 공적인 용도이다. 조선 전기에 내용 및 국용으로 사용된 자기의 종류에는 백자ㆍ청자ㆍ분청사기가 있으며 특히 분청사기의 양이 많았다. 이들 자가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행된 공납제(貢納制)의 체제에 따라 지방관부(地方官府)가 전국에 있는 자기소(磁器所)에서 현물의 세금인 공물(貢物)로 제작하여 중앙의 여러 관청에 납공(納貢)하였다.
이러한 조선 전기의 공납용 자기는 그 종류가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대체되고, 경기도 광주에 내용 및 국용 백자를 전담하여 제작하는 사옹원(司饔院) 사기소(沙器所)인 관요(官窯)의 설치가 완료되면서 크게 변화하였다.
본 논문은 관요의 설치가 완료되는 1469년 이전인 1440년대부터 공납용자기로 백자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고, 1450-1460년대에는 공납용 분청사기를 제작하던 여러 지역의 가마에서 공납용 백자를 제작하는 점에 주목하여 이 시기에 나타난 분청사기의 양식변화 및 제작기법에 따른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즉 1450년 이전에는 인화기법의 공납용 분청사기와 함께 여러 지역에서 주로 면상감기법으로 제작된 모란문이 1450년 이후에는 전라도에서는 조화(음각)기법으로, 충청도에서는 철화기법으로, 경상도에서는 조화기법 및 상감백자로 제작되었다. 또 1470년대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분청사기의 양식이 단순한 귀얄기법 위주로 변화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조선 전기의 자기를 대표하는 분청사기 소멸기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朝鮮 前期의 貢納用 磁器
Ⅲ. 공납용 자기의 변화
Ⅳ. 분청사기의 지역별 특징과 제작기법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조선 전기 공납용 백자제작에 따른 분청사기 양식변화」에 대한 질의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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