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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15집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209 - 253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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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파는 크게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성리학파에 이르게 되면 성리설의 내용으로 볼 때 사실상위와 같은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게 되며, 독자적인 연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중심 인물에 따라 학파를 구분해 보면 여러 학파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학파로는 정재학파定齋學派ㆍ화서학파華西學派ㆍ노사학파蘆沙學派ㆍ한주학파寒洲學派ㆍ간재학파艮齋學派 등을 꼽을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이들 중심 학파 중 간재학파의 연원과 형성, 사상적 특성 등을 살펴봄으로써 19세기 조선성리학파의 한 단면을 엿보고 그 의미를 논하고자 한다.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잇는 기호학파의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성리학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표적 인물이다. 전우의 성리설性理說은 그 사상적 특징으로 볼 때 김창협으로부터 이어지는 낙론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우의 성리설 전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첫째는 조선성리학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했던 인물들 즉 화서 이항로ㆍ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ㆍ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성리설을 율곡 이이 이후의 전통적 기호학파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심본성心本性’ㆍ‘성존심비性尊心卑’ㆍ‘성사심제性師心弟’ 등으로 대표되는 자기 설의 정립이다.
전우의 문하에 문인들이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40대 이후 본격화된 강회를 통해서였다. 전우는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을 순회하며 수시로 강회를 열었고, 학문탐구와 강학을 위해 수개월 동안 강학처에 머물면서 자신의 학문체계를 다지면서 강회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강학을 위해 가족들의 거처를 수시로 옮기기도 하였다. 전우가 독서와 강학을 위해 산사에 머물거나 거처를 옮길 때 늘 문인들이 시종하여 전우를 따라 거처를 옮기거나 아예 자신의 고향을 떠나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점은 전우와 문인들 사이의 학문적 결속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전우의 성사심제설, 성존심비설 등에 대한 기호학파 내부의 비판 및 한주학파와의 논쟁에서 전우의 문인들이 앞다투어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고 반비판에 나서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전우의 문인들은 스승인 전우의 길을 따라 유교적 도의道義 교육과 계승을 위해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강학과 수의守義로 점철한 삶을 살았는데, 이는 간재학파의 최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견지했던 전우의 성사심제ㆍr성존심비설은 인간의 자의성을 견제하고 도덕규범의 객관적 표준에 순응하기를 요구하는 규범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이런 면에 다른 학파보다 좀 더 보수적이고 엄격성이 강한 특징을 지니게 된다. 전우의 문인들의 삶은 이런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지금도 재전 혹은 삼전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간재 성리학의 학문 연원
3. 간재 성리학의 사상적 특성
4. 간재학파의 형성과 특징
5. 맺음말
참고 문헌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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