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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20號
발행연도
2005.6
수록면
225 - 25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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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백마회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어, 이후 1900년《파리 만국박람회》에도 출품되었던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의 기념비적 작품〈지ㆍ감ㆍ정〉은 등신대보다 약간 더 큰 나부 3인이 금지를 배경으로 각기 특징적인 포즈를 취하여 완성된 유채화이다. 그러나 근대 일본미술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ㆍ감ㆍ정〉에 관한 밑그림과 1차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 주제는 지금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려졌던 무렵, 구로다가 그린 이 세 여인의 전례 없는 조합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남기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사상가이자 미술비평가이기도 하였던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으로 그는 자신의 노트에 ‘지’, ‘감’, ‘정’ 의 문자를 남겼으며, 게다가 이들을 각기 영어로 ‘철학’, ‘미술’, ‘종교’ 의 문자와 병렬시키고 있었다. 양화가인 구로다와, 일본의 전통적 회화의 옹호자로 알려져 있는 덴신이 친밀하게 교류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동경미술학교에 서양화과가 새롭게 설치되었을 때 구로다를 교사로서 맞이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 미술학교 교장으로 있었던 덴신이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덴신의 노트에 서양화가로서 등장한 단 한 사람의 인물이 구로다였다는 사실도 덴신이 구로다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구로다가 〈지ㆍ감ㆍ정〉의 구상을 시작했을 무렵,《파리 만국박람회》의 준비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당시 구로다와 덴신은 빈번히 회견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들은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의 양화가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이국취미를 배제하면서도 ‘일본’ 을 강하게 감지시키는 작품을 출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젊어서부터 서양의 문화를 익혀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있던 덴신과 구로다는 서양과 일본의 미술이 서로 이해하며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ㆍ감ㆍ정〉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출품을 의식하여 그려졌다고 한다. 3인의 나부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린 프랑스의 아카데믹한 전통 회화기법과, 금지를 배경으로 朱線의 윤곽을 끌어들여 일본의 불교회화 양식을 조합시킨 방식의 배후에서 덴신의 의도를 읽어 낼 수 있다. 덴신의 노트와 강의록에 의하면 ‘지’, ‘감’, ‘정’은 각기 ‘철학’, ‘미술’, ‘종교’를 표출하고 있음과 동시에, 불교미술의 대표적인 양식인 석가삼존형식의 ‘문수’, ‘석가’, ‘보현’ 에도 대응한다. 그렇다면 〈지ㆍ감ㆍ정〉은 석가삼존에서 영감을 얻어 그려진 것은 아닐까.
1903년에 쓰인 『동양의 이상』에서 덴신은 중국의 철학과 인도의 종교가 일본의 미술에 집약되어 있다고 하는 아시아 문화관을 피력하였다. 따라서 〈지ㆍ감ㆍ정〉은 덴신의 세계관을 나타내며, 그 정신의 상징적인 초상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목차

Ⅰ.〈智, 感, 情〉작품 제목의 유래와 덴신의 메모에 관하여
Ⅱ. 메이지 30년 전후의 구로다와 덴신
Ⅲ. ‘사실파’ 화가
Ⅳ. 렘브란트와 고린(光琳)
Ⅴ. 《파리 만국박람회》로-〈智, 感, 情〉에 놓인 덴신의 전략과 세계관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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