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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19號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287 - 31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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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와 예술의 重心은 黃河 유역의 北方에서 長江 이남의 南方으로 옮겨졌다. 이유는 宋ㆍ元代 이후 중국 경제의 중심축이 남쪽으로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이미 연구된 바이다. 그럼 경제가 남방으로 옮겨진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대개 북방에서 전쟁이 자주 발생하여 경제가 무너졌다고 하는데, 필자는 북방 낙후의 근본원인은 전쟁이라기보다 북방에 펼쳐져 있던 大森林의 파괴였다고 본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仰韶文化의 三壘層에 대한 조사와 『史記』ㆍ『尙書』 외 여러 역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보면, 黃帝와 炎帝가모두 북방에 거주하였고, 남쪽의 거대세력인 蠻族이 북방으로 옮겨왔다가 황제족에게 패하여 복속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남방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북방으로 옮겨온 이유는 중원이 살기에 좋았고 문화발전에 적당하였기 때문이다. 북방에는 전쟁도 많았지만 이와 함께 경제도 발달하였다. 이에 초기 북방에서 華族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곧 漢族의 기반이 되었다.
북방에서는 중국 초기의 문명발달이 이루어졌고 문자가 창조되었다. 夏ㆍ商ㆍ奏ㆍ漢의 왕조가 모두 북방에서 일어났고, 중국 초기 황제와 聖賢들은 물론 儒ㆍ道ㆍ法家 등의 모든 사상가들 및 十三經의 중요 전적이 모두 북방에서 나왔다. 반면 남방에서는 문화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중국 초기에 북방이 살기 좋고 문화발전에도 유리했던 것일까? 세계적 문명이 발달되었던 고대국가들은 모두 유명한 원시대삼림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대문명국의 낙후는 대삼림의 훼손과 연관이 있었다. 바빌론과 이집트 등의 문명성쇠도 삼림의 흥쇠와 관련 있었다. 중국의 초기에도 북방의 황하 유역, 俠西ㆍ山西ㆍ河南ㆍ河北 등지가 모두 대삼림이었다. 오늘날 거대한 석탄매장이 이를 증병한다. 중국 북방에는 탄광이 발달하였지만 남방에는 그러한 대탄광이 없다. 석탄이 만들어지는 지질학적 조건은 고식물(즉 삼림)과 온도, 그리고 습도이다. 3000년 전 북방은 따뜻하고 습윤한 기후의 삼림지대였다. 남방에는 북방과 갈은 대삼림이 없었고, 북방은 남방에 비하여 사립들이 살기에 좋았다. 북방의 삼림에 대하여는 역사서의 기록과 商ㆍ周에서 만들어진 청동기 위의 수많은 동물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대나무가 많이 나서, 초기의 문자는 죽간에 기록되었고, 야후 북방의 죽림칠현은 분명히 대나무 숲에 살았다.
문화중심이 줄곧 북방에 있다가, 五代에 이르면, 중국문회는 남북으로 분열ㆍ발전하게 된다. 오대 이전 ‘東晋’ 이 南京에 도읍을 정하면서 북방의 상류층 문명이 남방으로 전달되었고 이는 남방문화발천의 기초가 되었다. 여기서 남북문화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아직 문화의 분열은 아니었다. 이후 唐代 말기와 오대에 걸쳐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중국 북방의 경제와 문화는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한편 남방은 전쟁이 적었고 경제가 점진적으로 나아졌기에 문화도 점차 발전할 수 있었다. 즉 오대부터 중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은 점차 남방으로 옮겨졌으며 곧 중국문화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단 이는 북방문화가 남방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방의 독자적 문화가 발전하여 북방을 능가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은 점점 文弱하여졌다.
중국문화의 분열과 남쪽으로의 중심이동은 繪畵와 文學 분야에서 모두 증명되는 일이다. 당대의 회화는 장안을 중심으로 한 북방중심의 문화였다. 오대에 이르면 북방의 荊浩와 關全이 북방산수를 그리고, 남방의 童源과 巨然이 남방산수를 그림으로써, 오대의 산수화풍은 남북문화의 다른 특성을 이루었다. 남과 북, 두 계통의 문화가 생긴 것이다. 문학 또한 당대에는 북방문인들이 우세하였으나, 오대에는 남방의 詞가 크게 일어났다. 남방의 사문학은 화려하고 부드러워 북방시문의 웅장하고 강경함과 완전히 달랐다. 오대의 남북방 문화는 서로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었으나, 오대가 지나면서 중국의 문화중심은 남방으로 옮겨졌다. 송대 이후 화가와 화파들은 거의 다 남방에서 나왔다. 북송대 문인들은 동원과 거연을 지극히 숭앙하였고, 明代 말기 南北宗論은 남종회화를 정통으로 삼았다. 문학 분야에서도, 당대의 대시인들은 모두 북방 출신이었지만 송대 이후 대문인들과 문학유파는 대개 남방에서 나왔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문화적 인물들은 대개 남방에서 나오고 있다.
북방이 낙후된 근본원인은 북방의 대삼림이 파괴된 데 있다. 고대국가의 도성건축을 위한 대규모토목공사, 거대한 棧道의 구축ㆍ厚葬의 유행에 따른 목관(棺ㆍ槨) 제작의 풍속 등은 모두 대량의 목재를 필요로 하였다. 게다가 고대의 수렵(狩)은 산을 불태우는 것이었고, 논밭을 만드는 방법도 나무를 베고 산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북방의 오랜 전쟁도 삼림을 크게 훼손시켰다.
오늘날 섬서성과 산서성은 드넓은 황토고원이다. 대삼림은 완전히 사라졌고 문화발전도 없다. 오랜 삼림파괴가 없었다면 지금도 중국 북방은 대삼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림을 잃은 북방은 삼림의 조절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기후는 몹시 추워졌으며 이에 따라 가뭄ㆍ홍수ㆍ풍재 등이 점점 증가하였고 토질은 척박하여졌다. 척박한 토지에서는 선진적 문화발전이 불가능하다. 무릇 나무가 푸른 지역에서 총명한 인재가 난다. 이에서 삼림의 훼손이 문화에 끼친 중대한 작용을 알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중국 초기, 북방이 남방에 비하여 거주와 문화발전에 더욱 적절하였다
중국 초기, 문화적 주요 인물과 서적은 모두 북방에서 나왔다
중국 초기의 문화에서 왜 북방이 선도적이었나
五代, 중국문화의 분열
오대 이후, 중국문화 중심의 남쪽으로의 이동
중국문화의 분열 및 중심이동의 근본원인: 삼림의 파괴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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