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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177 - 20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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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의 어부가는 조선후기 서울에서 나서 평생 서울과 부근 근기(近畿)를 중심으로 생활하였던 소위 경교인(京郊人)의 작품이다. 경교인은 일반적으로 서울의 경저와 근기의 별서만을 이동하며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서울의 유력 양반들은 대부분 서울 도성의 경저와 함께 근기 지역에 자신의 별서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후기 경교인의 은거문학은 거의 대부분 경저로부터 근기의 별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창작되었다. 이한진의 어부가는 서울에서 근기의 영평(永平)으로 내려오면서 창작한 작품이다.
은거문학은 반드시 자신의 거주지가 갖는 어떤 공간 개념 위에서 창조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서울에서 영평 가는 길에는 축석령(祝石嶺)이라는 높은 재가 가로놓여 있어 재를 넘어가는 사람에게나 오는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영평까지는 140리(里), 하루 반나절 내지 이틀을 꼬박 육로만을 타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도 여타 지역에 비해 근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 더욱이 영평은 이 축석령이라는 커다란 재로 인해 모든 것의 중심을 이루는 한강과 인연을 맺지 못하였다. 영평은 이처럼 한강 수로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서울에서 영평으로 내려가 은거한 인물들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한양에서 축석령 재를 넘어와 이곳에 은거하며 정치판과 담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는 서울에서 영평까지의 여정이 하룻길이 넘는다는 사실이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한진의 어부가는 세상을 온통 잊어버리고 사는 어부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 어부의 삶은 세상이 싫어서 혹은 세상에 치여서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곳에 존재한다. 그는 세상사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다. 세상을 온통 버리고 잊은 것이다. 이한진의 어부가가 보여주는 이 같은 고도발속의 어부 형상은 조선후기 경교인이 지니고 있던 영평의 지역적 정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永平의 近畿性과 李漢鎭의 永平行
3. 지역문학으로서의 〈續漁父詞〉
4. 결어
참고 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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