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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23號
발행연도
2006.12
수록면
7 - 4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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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역사상 고분벽화가 가장 처음 출현한 것은 전축분의 출현과 동시기, 혹은 그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1세기, 즉 서한 中後期이다. 이후 묘의제도가 변화함에 따라 동한 만기에 이르러 고분벽화는 커다란 발전기를 맞아 중국 각지에서 많은 고분벽화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삼국시기에 들어서면 경제적 피폐로 인한 節葬의 시행 등으로 말미암아 벽화고분은 중원 지구에서 일시적으로 자취를 감춘다. 다만 변방에 속하는 동북과 서북지역에서는 여전히 고분벽화가 출현했다.
십육국시기에서 북조 초기에 걸쳐 고분벽화의 제작은 새로운 발전 국면을 맞았다. 남북조 만기에 이르면, 기후가 습한 남조의 고분에서는 ‘끼워 맞춤식 ?畵’가 유행, 북방의 고분벽화의 변천에 영향을 미쳤다. 북조의 경우 북위의 평성 도읍시기에는 고분벽화가 아직 북위 묘의제도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동위ㆍ북제에 이르러 고분벽화는 황제 및 귀족들의 墓儀제도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벽화의 예술적 수준 또한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반면 북조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서위ㆍ북주는 비교적 보수성이 강해 아직 황릉에 고분벽화를 그리지 않았다.
수당시기, 중국의 고분벽화는 전성기를 맞았다. 통일왕조 수대에 시작된 예술 융합의 풍조는 당대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양식을 탄생시켰다. 고분벽화는 내용과 기법 모두 당시 회화 예술의 새로운 발전을 반영하고 있어 고분벽화의 양식과 제재를 통해 당시 회화예술의 변화상을 읽어낼 수 있다.
북송과 요대에도 여전히 황제의 능묘에 벽화를 그렸다. 그러나 이 시기 고분 벽화의 자료는 대부분 평민묘에서 발견됐다. 이들 평민묘의 벽화는 당시 일반 민중의 생활정경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요대 고분벽화는 거란족의 생활상을 반영한 그림들을 그려, 민족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원대 이후 고분벽화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비록 일반 관원과 민중의 분묘에서 벽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원ㆍ명ㆍ청대의 황릉에는 벽화가 없다.
고대 중국, 즉 송대 이전의 현존하는 회화 眞作이 아주 적은 현재, 한대에서 당대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고분벽화는 중국 회화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실물자료이다. 나아가 이들 고분벽화는 중국 고대인의 상장제도와 관념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본고는 중국 고대 고분벽화의 발견과 연구 현황을 종합함과 동시에 과거 연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앞으로 지행해야 할 연구방향을 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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