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2집
발행연도
2009.10
수록면
27 - 52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족보는 자신의 家系와 血族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그 집안의 내력과 함께 그 영예를 계속 보존하기 위하여 작성된 책이다. 우리나라의 가계기록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다. 족보의 제작은 조선 초부터 시작하여 중기 이후에 본격화 되었다. 17세기 이후 모계와 부계를 같은 비중에 두는 전통적인 족보 방식에서 벗어나 유교적 영향을 받은 부계 중심의 족보로 바뀌어갔다.
본고에서는 18세기 후반을 살았던 황윤석의 『이재난고』에 나타난 『평해황씨세계』의 편찬과정과 특징 및 그의 족보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먼저 황윤석이 족보를 작성하려는 배경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는 황윤석 계파의 상황을 정리하여 후세에 물려주기 위한 의도였다. 둘째는 기존에 있던 평해황씨 족보에 황윤석 일파에 대한 오류 등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셋째는 興德으로 入鄕한 이후 집안이 번성하지 못하여 자신의 계보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넷째는 당시 만연되어 있던 불합리한 족보 편찬 풍조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가 족보를 작성한 과정에서는 『氏族源流』, 『東國輿地勝覽』, 『古譜』, 『春川帳籍』, 榜目, 古跡 등 여러 문헌자료가 이용되었다. 그 외에 제보나 소문에 대한 탐문이 있었고, 묘지석이나 묘표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비교·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보학 지식은 평해황씨 종합보를 편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다른 집안의 족보 제작에도 조언을 줄 수 있었다. 이 결과, 『평해황씨세계』와 「越松黃氏先跡考」가 완성되었다.
황윤석이 만든 족보는 통합보가 아닌 직계 위주의 족보로서, 이런 방식이야말로 혼입이나 오류를 방지하고, 신빙성과 사실성을 갖춘 족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태도는 당대 그 누구보다 실증적이었고,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서술을 중시했다.
『평해황씨세계』는 ‘本宗平海黃氏先系’의 世系圖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국조보감』, 『成均館靑衿錄』, 通政大夫府君(黃紐)墓表와 學生府君(黃應中)墓表, 황응중이 작성한 「舊牒」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종평해황씨선계’의 수록 범위는 1世 黃叔卿으로부터 황윤석의 아들 대까지이며, 자녀와 사위, 외손 및 그 후손 대까지의 혈족 모두를 기록했다. 구성 방식은 각 인물마다 거주지, 자호, 배우자 및 그의 四祖를 기록했다. 子, 女(女壻), 庶子女의 순으로 썼고, 繼子를 덧붙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어떤 족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딸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평해황씨세계』는 부계 중심의 족보 편찬 방식과 함께 모계와 부계를 동일 비중에 두는 전통적인 혈연적 친족구조의 족보방식이 함께 사용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당시 내외보나 팔고조도 등의 제작 경향과 함께 전통적인 혈연적 친족을 모두 수록하는 조선 초기의 족보 편찬 방식이 이 당시까지도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황윤석의 족보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한 방식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평해황씨세계』의 편찬 배경
Ⅲ. 『평해황씨세계』 편찬 과정의 특징
Ⅳ. 『평해황씨세계』의 구성 방식
Ⅴ. 맺음말
참고자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151-018988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