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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경목 (전북대학교박물관)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4집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235 - 26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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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가 본격적으로 편찬?간행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조선전기에 安東權氏나 文化柳氏와 같은 몇몇 씨족을 중심으로 족보가 간행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족보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특정한 한 성씨를 중심으로 한 족보는 주로 조선후기에 편찬?간행되고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후기에 족보의 편찬?간행이 활발해지면서 그 과정에서 분쟁이 잦았는데 그 배경은 먼저 門閥 崇尙의 풍조와 깊은 관련이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족보 증거력의 제고와도 관련이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소송이나 청원에서 족보가 중요한 증거자료로 제시되었다. 그러자 족보에 이미 편입되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족보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족보에 끼어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족보 편간 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譜訟이라 하였는데 크게 두 가지 즉 고의에 의한 분쟁과 실수에 의한 분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자는 庶族들이 庶族라는 사실이 드러내지 않도록 족보 간행자들을 매수하여 그들의 이름 앞에 쓰인 ‘庶’ 字를 없애버리거나 혈연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역시 족보 간행자들을 매수하여 자신과 자신들의 조상을 특정 성씨의 족보에 편입시킴으로서 발생하는 분쟁이었다. 이러한 분쟁은 종중에서 해결하지 못해 관에 고발하는 수순을 밟았다. 후자는 글자나 이름이 잘못 기재되거나 脫漏되어 일어난 분쟁으로 대부분 종중에서 마무리되었다. 족보 간행 후 대금을 거두는 과정에서도 갈등과 분쟁이 적지 않게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별고로 작성할 예정이다.

목차

1. 서론
2. 분쟁의 배경
3. 편간 과정상의 분쟁
4.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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