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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5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213 - 25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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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중대 이후 지속적으로 당의 관제와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운용에 있어서 관료체제로의 변화를 지향했다. 당제의 이념적 바탕인 유학의 수용과 이해는 필수적이었으므로, 중대 왕권은 유학의 사회적 확산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왕은 관료체제의 정점에서 유학적 의미의 王者로 군림하고자 했다.
본고는 王者로 군림한 왕이 자신의 권위를 왕위계승자인 太子에게 승계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적 장치인 東宮制度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신라에서는 眞興王代에 왕위계승제도인 태자제도가 확립되어 동궁 설치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중대 왕권은 지속적인 관제개혁을 이루었다. 文武王代에 이르러 唐制를 모방한 관제개혁의 일환으로 동궁이 설립되었다. 동궁에는 東宮官이라 하여 태자를 보필하는 관부와 관원이 배속되었다. 景德王代에 東宮衙가 설치되어 東宮官이 정비되었다. 동궁관의 관부와 관원은 태자를 보필하고 각기 고유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특히, 동궁의 御龍省과 洗宅은 국왕 직속 기관에 대응되는 近侍ㆍ文翰기구로, 태자가 왕 다음 가는 제도적 위상을 보장받았음을 보여준다. 태자는 동궁관의 운영을 통해 자신이 왕위에 올랐을 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경험을 쌓았다.
동궁제도의 성립이후 왕자가 어린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던 사례가 빈번할 만큼 태자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태자 책봉은 왕위의 정통성을 표방하는 기제가 되었다. 왕의 考와 母 등의 추존과 함께 이루어진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태자는 책봉 후 監國을 통해 정권을 보좌하고 국정을 경험하는 한편, 다음 왕위를 이을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태자로 책봉된 이들은 사망하지 않는 한 모두 왕위를 이었으며, 사망한 경우에도 태자로서 시호를 받았던 사실로 미루어 그들의 위상이 짐작된다.
유학 학습과 유가윤리의 내면화는 太子가 왕위계승자로서 요구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태자는 태자와 왕족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인 崇文臺에서 經學을 중심으로 교육받았다고 보인다. 태자 교육은 하대에 계속 확대되어 太子侍書學士가 신설되었고 아울러 태자시독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태자는 높은 유학적 지식을 가진 학사들의 보필을 받아 제왕이 되기 위한 제도적 교육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동궁제도는 다음 왕이 될 태자로 하여금 왕위계승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왕이 될 역량과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태자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東宮制度의 성립
Ⅲ. 東宮制度의 운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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