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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載名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7호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89 - 12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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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宗 8년부터 뽑기 시작한 東宮侍衛公子는 동궁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궁의 관원은 아니었다. 太子와 어울리면서 공부도 도와주고 놀이도 함께하는 학우였다. 그런 면에서 東宮學友나 春坊學友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 밖에 春坊侍學公子를 비롯하여 春坊公子?春坊侍學?侍學公子등의 다양한 별칭이 있었다.
이러한 동궁시위공자는 할아버지가 3品官이상이거나 아버지가 5品官이상인 文武官의 자제 중에서 선발된 20명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이들보다 父祖의 官品이 좀 낮은 가문의 자제로 충원되는 10명의 東宮侍衛給使가 따로 있었다. 이들은 대개 7∼8세에 책봉되는 태자의 학우였던 만큼 태자보다 약간 나이가 많지만 비슷한 또래의 어린이 중에서 선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태자 책봉에 앞서 이루어지는 太子府設立무렵에 뽑았는데 결원이 생기면 추가로 충원하였고, 시험보다는 주로 薦擧의 방식으로 선발하였다. 선발 이후의 관리는 태자부 내에서 侍從과 贊相을 맡은 左春坊의 소관이었으며, 관원이 아니므로 田柴科나 祿俸과 같은 경제적 대우는 받지 못하였다.
이 같은 동궁시위공자 제도는 여러 조카를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경험을 거울삼아 어떻게든 자신만은 원자에게 왕위를 계승시켜야겠다고 다짐한 文宗의 확고한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를 연결고리로 삼아 태자와 귀족 관료의 유대를 공고히 함으로써 태자의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담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귀족 관료들도 자제가 동궁시위공자로서 미래 권력인 태자와 유대를 맺음으로써 장차 남보다 쉽게 입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결국 동궁시위공자 또한 왕과 귀족 관료가 정치적인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상호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별칭과 기능
Ⅱ. 구성과 운영
Ⅲ. 설치 배경과 성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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