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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 韓國史硏究 제136호
발행연도
2007.3
수록면
29 - 5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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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삼론학파의 계보는 僧朗에서 시작되어 吉藏(549~623)에서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중국 초기 삼론사상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경쟁하는 분파들이 존재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론사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백제에 전해졌는지의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백제에 전래되고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삼론사상이 어느 분파의 것이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慧均의 《大乘四論玄義記》가 백제에서 찬술된 문헌으로 밝혀진것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들에서 검토된 것처럼 《대승사론현의기》의 내용은 길장의 저술로 전해지는 《大乘玄論》과 대단히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두 문헌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法朗의 가르침에 대한 빈번한 언급은 두 문헌의 찬술자들이 동일한 스승의 제자로서 사상적으로 거의 비슷한 입장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혜균과 길장 모두 法朗에 의하여 형성된 논리 형식인 ‘初章’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승사론현의기》 중의 〈初章中假義〉에서 길장의 이론과의 차이점을 발견한 일부 일본 학자들은 혜균의 사상이 法朗과 吉藏에 의해 비판되었던 中假師와 연결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렇지만 《대승사론현의기》의 내용으로 볼 때 혜균은 中과 假를 구별하는 中假師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續高僧傳》의 기록에 의하면 길장 역시 혜균과 동일한 논리를 제시하였다. 따라서 혜균과 길장의 기본적 입장은 동일하였다고 할 수 있다.
《대승사론현의기》와 《대승현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른 목적을 위해 찬술되었던 글들을 후대에 편집한 後者와 달리 前者는 처음 부터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찬술되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대승사론현의기》는 《대승현론》에 비하여 훨씬 알기 쉽고 명확하게 씌어졌으며, 이런 점에서 초보자들을 염두에 두고 찬술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사론현의기》의 작자를 비롯한 백제의 삼론학자들은 자신들을 陳?隋?百濟 등의 국경을 넘어 발전하였던 국제적 학파인 法朗을 계승한 “一家”의 일부로 간주하였고, 이는 정당한 인식이었다.
혜균과 길장이 모두 法朗의 사상에 의거하고 있고, 기존의 연구들을 통하여 밝혀진 것처럼 “一家”의 저술 태도가 ‘교학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집착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혜균과 길장의 저술에서 사소한 방법론적 차이 이상의 사상적 차이를 발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혜균과 길장의 저술은 “一家”의 사상과 논리적 틀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서로 상보적인 것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활동하였던 뛰어난 삼론학자인 혜균의 발견은 백제 삼론학뿐 아니라 元曉의 和諍 사상에 대한 이해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대승사론현의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백제에서의 三論사상과 攝論사상의 갈등은 唯識사상과 中觀사상에 대한 원효의 비판이 단순히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배경을 갖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며, 이를 통하여 원효의 사상에서 화쟁사상이 강조된 것이 고려시대와 식민지시대의 정치적 관심사에 의한 왜곡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견해들을 반박할 수 있게 한다.
원효는 실제로 《대승사론현의기》를 읽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원효의 《涅槃宗要》에 나오는 佛性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비슷한 내용이 《대승현론》 중의 〈佛性義〉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이미 1980년대 초에 지적되었지만 비슷한 내용이 《대승사론현의기》의 〈佛性義〉에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까지도 간과되어 왔다. 《열반종요》에서 제시되고 있는 여섯 가지 입장은 《대승사론현의기》와 《대승현론》에 나오는 열 가지 혹은 열한 가지의 입장 중에서 선택된 것들이다. 《열반종요》의 내용이 간결하기 때문에 원효가 어느 문헌에 근거하여 서술하였는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원효는 여섯 입장 중 다섯 입장의 주창자들의 개인적 이름이나 주석했던 사찰의 이름을 ?白馬寺愛法師, 莊嚴寺, 光宅雲法師, 梁武蕭焉, 新師?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름들이 길장의 저술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반면 혜균의 저술에는 新師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이름들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로 보아 원효는 해당 부분을 저술할 때에 《대승사론현의기》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원효가 《대승사론현의기》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저술인 《初章觀文》의 성격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初章’이 《대승사론현의기》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적 논리적 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효의 《초장관문》은 法朗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관련된 저술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 중요한 점은 《열반종요》에 나오는 佛性의 본질에 대한 여섯 가지 입장에 대한 논의가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주장들의 결점을 지적하여 부정한 이후에 원효는 뜻밖에도 모든 주장들이 “옳기도 하고 옳지 않기도 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佛性이 “不然”이므로 각각의 주장이 모두 잘못되었고, “非不然”이므로 각각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을 통하여 모든 것을 긍정하는 원효의 인식 방법을 길장의 〈佛性義〉에 나오는 논리와 연결시켜 이해하였다. 그렇지만 어떠한 견해를 “(오직 하나의) 올바른 것”으로 주장하면 그것은 곧바로 일방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것이 되지만 道의 입장에서 방편으로서 견해들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올바를 수 있다는 화쟁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대승사론현의기》의 입장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 사람 모두 是와 非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길장은 《莊子》 〈齊物論〉에 대한 郭象의 주석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원효나 혜균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대승사론현의기》에 보이는 ‘邪見六師’에 대한 언급은 원효가 佛性의 본질에 대한 주장들 중에서 여섯 가지의 견해들만을 제시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원효는 혜균과 길장의 양 저술 모두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길장의 《대승현론》이 원효의 화쟁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면 《대승사론현의기》가 원효의 화쟁 이론에 영향을 미친 증거는 더 크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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