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6 봄호 제29권 제1호 (통권 102호)
발행연도
2006.3
수록면
179 - 207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9세기말, 崔致遠이 왕명을 받아 찬술한 眞鑑禪師碑와 智證大師碑, 大崇福寺碑의 내용에는 王土라는 어구가 수차례 등장한다. 우선 이들 사료를 통해서 9세기말의 신라에서는 모든 땅이 王土로 인식되어 있었고, 이러한 王土思想이 王者의 권위를 보여주는 지배사상으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여기에는 왕의 법력ㆍ왕명이 미치는 땅인 것을 명확히 나타내는 內와 外를 구분하는 경계인식을 포함하면서, 內의 신라국토를 새롭게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王土思想에는 기왕의 法을 합리화시킬 만한 힘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하는 왕권이나 국가는 王土라는 새로운 지배사상을 이용함으로써 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행위도 가능하게 되었다. 즉 여기서 말하는 王土란 무제한하게 퍼지는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극히 한정된 지배영역을 의미하고 있었다.
王土思想이 표면화되는 憲康王ㆍ定康王ㆍ眞聖女王의 시기는 國內外 情勢가 크게 변동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唐에의 유학 경험을 갖는 六頭品知識人의 사회적 진출이 현저해졌고, 지배자층의 의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짐작된다. 崔致遠이 왕을 대신하여 작성한 당에 보낸 表에는 신라가 처한 상환을 기술한 장면이 보이다. 그들은 唐을 중심으로 하는 東아시아 정세 속에서 黑水侵彊(外敵의 침입)과 綠林成(元宗ㆍ哀奴의 亂을 비롯한 盜賊蜂起나 後百濟의 건국)을 신라의 국가체제를 흔드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배자층의 인식 변화가 內와 外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자기의 공간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王土思想의 생성에 연결되었다고 본다.
9세기 이후 신라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부호층은 스스로를 무장화하는 것으로써 국가에 세를 납부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라국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쇠퇴해져가는 국가질서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賊勢力과 관계 깊은 역사적ㆍ지리적 환경의 지역에서 王土를 公田이나 私田의 개념을 超越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나 碑石 원래의 건립목적을 가미한다면, 이 지역에서의 王土思想의 역할은 물론 신라왕권이 이 사상을 채용한 이유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王土思想은 국가지배가 미치지 않은 영역에서의 土地集積의 행위를 王土라는 이유로 정당화시켜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수취체계를 확립하는 국가지배력의 재편을 이념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왕의 국가질서를 초월한 지배사상으로써 채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田券이 제작된 사실도 王土思想의 영향을 받은 구체적 모습이라고 추정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崔致遠의 『四山碑銘』에 보이는 王土의 性格
Ⅲ. 國內外 情勢의 變化와 六頭品知識人의 現實認識
Ⅳ. 新羅末期의 王土思想과 國家支配의 再建策
Ⅴ. 맺음말을 대신하여: 田券製作과 관련하여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s

참고문헌 (5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0-151-00173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