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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57號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67 - 10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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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초기 경전에서 說法主인 여래 주위로 무량보살중의 圍繞를 상징하는 수사법으로서 8이라는 숫자를 취해 八大菩薩을 헤아리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8이라는 숫자는 고대 인도의 방위 개념에서 전방위를 대유함과 동시에, 완벽한 수호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상징적 법수이기도 하다. 팔대보살을 명칭하는 경전은 40여 종 이상이 있고 호명되는 바는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팔대보살이 팔방에 偏在한다는 기본 개념은 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밀교의 만다라에 차용되어 본존 주위에 팔대보살을 조성한 예가 8세기 이래 인도, 돈황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석굴이나 사원에 봉안되었던 것은 대부분 不空 譯 『八大菩薩曼茶羅經』계열의 觀音ㆍ彌勒ㆍ虛空藏ㆍ普賢ㆍ文殊ㆍ除蓋障ㆍ地藏이었다. 이 계열의 팔대보살은 중국 이서지방에 머물지 않고 고려시대 아미타 관계 불화에도 수용되어 14점의 아미타팔대보살도를 남기고 있다.
고려불화에 등장하는 팔대보살은 경궤에 규정되지 않은 대세지보살이 포함되면서도 총 숫자는 변함없이 8로 유지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존명을 파악하는 데 큰 난점이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1776년명 전남 구례 천은사〈아미타후블탱〉 등에 기입된 존상의 명칭을 근거로 고려시대 팔대보살에는 허공장보살 대신 세지보살이 포함되며, 그에 따라 제장애(제개장)보살이 칼을 든다는 설이 일반적인 전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팔대보살 관련 경궤와 도상자료, 수량이 풍부한 인도와 돈황지역 팔대보살 작례에서 추출한 지물의 조형 경향과 비교함으로써 얻게 된 결론은 허공장보살이 탈락되었다고 보는 기존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 아미타팔대보살도에는 언제나 칼을 든 보살이 등장하는데, 문헌 자료에서는 칼을 들 수 있는 보살의 범주를 허공장, 보현 또는 문수로 제한한다. 그리고 인도 팔대보살이 보여주는 지물 표현의 경향성, 명문을 가진 돈황 팔대보살의 작례, 고려불화 내의 도상 전통을 참조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더욱 좁혀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문수와 보현은 한 쌍을 이루어 경책과 여의를 지물로 한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칼은 허공장의 지물임이 분명해졌다. 제개장이 칼을 지물로 한다는 설은 경전적 근거나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한편 고려 팔대보살 중에 언제나 포함된다고 생각되었던 세지의 도상 중에 세지의 전통적인 표식인 보관의 병 대신 화염보주가 표현되고 손에도 경합 대신 화염보주를 드는 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전체 작례의 1/3에서 발견된다. 팔대보살에 있어 지물은 존명을 구별짓는 중요한 표지이며, 다른 보살의 경우에는 약간의 형태 변화가 있을지언정 중요한 표식이 사라지는 경우는 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화염보주를 특징으로 하는 이 보살은 제개장으로 비정될 수 있다. 제개장과 관련된 각종 도상 자료에서도 제개장이 화염보주를 드는 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개장과 세가지 같은 자리에 흔재할 수 있었던 것은 화염보주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기 때문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도상학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아미타팔대보살도에는 허공장의 도상이 일관되게 존재하며, 제개장과 세지는 한 자리를 두고 대치 관계에 있다. 이렇게 고려시대에는 『팔대보살만다라경』의 존명을 그대로 따르는 팔대보살 세트와 제개장 대신 세지가 포함된 팔대보살 세트가 존재했는데, 이는 아미타삼존이 이 시기 보편적으로 강조되면서 이에 대한 선호가 불화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상 언급한 허공장, 대세지, 제개장 외에 정병, 경책과 여의, 보주를 든 보살은 돈황과 중국 송원대 불화, 고려 불화의 도상 전통과의 비교를 통해 각각 관음, 문수와 보현, 지장으로 판별 가능하다. 그리고 오불관을 쓰고 연화를 든 보살은 『慈氏菩薩略修愈?念誦法』의 내용을 통해 미륵으로 추론하였다.
관음, 세지(또는 제개장), 문수, 보현, 미륵, 지장, 금강수, 허공장으로 구성된 고려시대의 팔대보살은 아미타 신앙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아미타불의 본원을 성취하기 위해 망자의 내영을 돕는 실천자 무리로서 신앙되었다. 이들은 단독적으로 예배되지는 않았지만, 지물이 지시하는 각 보살의 개별적 정체성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꽤 뚜렷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어떤 구도적 변형에서도 각 보살의 지물이 가려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치를 조정한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팔대보살의 조형은 밀교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그 개념은 대승불교 초기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經中에서 설법청중, 대중 구제, 경전 수호, 망자의 내영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시대 팔대보살이 아미타불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게 된 것은 팔대보살이 전통적으로 담지하고 있었던 망자의 내영, 극락정토와의 관련성이 정토 신앙과 접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팔대보살의 배열형식과 持物상의 특징
Ⅲ. 팔대보살 존명 비정의 제 문제
Ⅳ. 고려시대 팔대보살의 개별 존명
Ⅴ. 팔대보살의 역할
Ⅵ.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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