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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18집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27 - 5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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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자료 인 『조선아악(朝鮮雅樂)』에 기록된 1913년 고종(高宗) 탄신일 축하연에서 연행된 악무에 관한 연구이다. 1913년 9월 8일, 덕수궁(德壽宮) 돈덕전(惇德殿)에서 거행 된 이 연향은 1912년 고종의 회갑(回甲)을 축하하기 위하여 마련되었으나, 사정으로 인하여 한 해 늦추어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의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이미 국권(國權)을 상실한 시기에 열린 이 연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시기의 국연(國宴)과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국권상실기에 마련된 비교적 큰 규모의 왕실 연향인 고종 탄신일 축하연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고, 이 축하연에서 연행된 음악과 무용 및 그 담당층에 관하여 고찰한 다음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의 궁중연향을 비교하여 그 차이점 을 밝혀 보았다
그 결과 1913년 고종 탄신일 축하연의 형식과 내용은 조선시대나 대한제국기의 국가적인 연향인 진연ㆍ진찬 등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의례 자체가 전혀 달라졌기 때문에 이들 행사에서 연행된 음악과 무용의 내용도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왕실의 의례가 변화를 보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국권을 상실한 이후이기 때문에 고종에게 한 국가의 군주에 해당하는 예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의례의 형식과 내용이 큰 변화를 보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왕실 의례의 서구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축하연의 준비과정에서부터 전통적인 진연이나 진찬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였으며, 외빈이 참석하는 잔치는 서양식 연회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장소와 음식이 모두 서양식으로 준비되었고, 연회의 주악도 서양음악이었다. 대부분의 전통 악무는 ‘여흥(除興)’의 위치로 밀려나게 된 점은 당시 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아악』의 관련기록을 통하여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서 비록 여흥의 절차에서이지만, 다양한 민간음악이 공연되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이 시기 문화계의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조선아악』수록 탄신연 관련자료
3. 고종 탄신일 축하연의 개요
4. 탄신일 축하연의 악무와 담당자
5. 20세기 초 궁중 연향 악무의 변천
6. 맺음말
〈참고자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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