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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19집
발행연도
2005.9
수록면
103 - 13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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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시기에 중국의 軍事와 外交를 총괄한 李鴻章의 외교노선은 중국의 전통적 외교방식인 以夷制夷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청일전쟁 직전에 중국에서는 열강의 세력 확대에 대한 대응과 관련하여 李鴻章을 대표로 하는 주화파와 翁同?를 대표로 하는 주전파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주전파는 열강의 침입에 대한 강경 대응과 반이홍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일 간의 군사력 격차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었다. 반면 주화파는 군사실무 담당자의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청일전쟁에 직면하여 이홍장은 영국과 러시아의 중재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였으나, 러시아는 중국을 원조할 경우 영국의 침략을 유발할 것을 우려하여 사실상 중립을 표명하였다. 더욱이 영국은 러시아 세력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동방의 맹방으로 간주하였으며, 사실상 일본의 중국 침략을 용인하였다. 이러한 결과 열강을 통한 외교적 해결이라고 하는 중국의 외교정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은 러시아의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의 요동반도 조차를 좌절시킬 수 있었지만, 이러한 결과 제국주의 러시아에게 막대한 대가를 치루었을뿐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성이 드러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시 유사한 이권을 기타 열강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는 이이제이식 외교 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하여, 중국의 반식민지적 성격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목차

한글 논문개요
영문 논문개요
Ⅰ. 序論
Ⅱ. 淸日戰爭 直戰期 主戰論과 主和論
Ⅲ. 淸日戰爭과 중국의 開戰外交
Ⅳ. 淸日戰爭의 終結과 中國 外交의 變化
Ⅴ.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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