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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5집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87 - 12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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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이르러 조선의 유학계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입장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척사위정론의 입장에서 조정의 근대화 정책에 반대하고 전통적 유학사상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유지하려던 집단이다. 다른 하나는 유학에 대한 전통적 입장을 수정하여 동도서기론적 입장에서 유학을 근대화 과정에 적응시켜 보려던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동도서기론적 전통을 이어받은 일단의 유학자들은 한일 합방 직전 유교를 근대종교로 개혁하고자 했다. 전통사상이었던 유교를 근대 종교로 개혁하고자 하는 운동은 척사위정론을 배경으로 한 의병투쟁이 한계에 다다른 1909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전개되었고, 그 대표적 움직임으로는 대동교 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신종교 운동은 공자를 교조로 삼고, 그 근본이념이 대동주의임을 천명하면서 1909년 9월에 발족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인물들은 ‘유교구신론’을 제기하던 개신적 유학자들이었다.
한편, 개항기 최말엽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의병운동으로 전개된 척사위정斥邪衛正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그리고 비폭력적 방법에 의한 반제국주의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던 유교계의 대동교운동에 대해서는 친일본적 사상운동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했다. 그리하여 일제는 대동교 운동에 대한 견제작업으로 ‘공자교회’를 발족시켜 친일적 유림들을 결집시키고자 했다. 이들은 통감부와 총독부의 절대적 지원하에 향촌의 여론을 친일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시도했다.
척사위정을 표방하면서 전개되던 의병운동이 좌절되던 과정에서 일부 유교계에서는 무력적 방법이 아닌 대중적 종교운동으로 척사위정의 이념을 전파시키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계열의 운동을 태극교 운동으로 볼 수 있다. 태극교에서는 유교를 개혁하려는 노력자체를 반대했다. 그라고 개화기에 성취되었던 일련의 근대적 개혁에 대해서 강한 저항을 사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 종교운동의 형태에 있어서는 근대적 종교의 틀을 갖추고자 했으나 그 이념적 측면에 있어서는 전통사상을 고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개항기에 이르러 유학계는 시대에 대한 대응의 방법론에 따라 그 갈래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한 과정에서 유교는 일종의 근대종교화운동을 전개했다. 이 종교운동은 여라 갈래로 전개되었다. 즉,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개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대동교, 친일적 개화를 추구하던 공자교회, 전통유교의 고수 및 반근대적 움직임을 드러내었던 태극교 등으로 크게 나뉘었다. 그러나 개항기 최말엽에 전개되었던 이 유교계 근대종교운동은 식민지시대에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시대적 전환기에 대응하고자 하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한국문화 안에서 오늘날까지 유교적 가르침이 일정한 가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유교계 조교운동의 배경
3. 유교 개혁운동과 대동교大同敎의 창설
4. 반일유교운동에 대한 대응 양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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