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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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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11호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5 - 2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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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막의 근대적 변화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이다. 전근대 시기인 18~19세기 조선 후기의 주막은 한양의 경우와 지방의 경우가 달랐다. 한양의 주막은 술과 안주를 판매하는 술집의 기능을 주로 하였고, 지방의 경우 장시(場市, 정기시장)와 거리의 주요 이동 지점에서 술과 밥을 판매하면서 숙박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등장한 서유럽의 전문적인 음식점과 조선 후기의 주막은 그 기능에서는 비슷했지만, 실제의 운영이 전문적이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복합적 기능을 수행했던 조선 후기의 주막이 19세기 말 서구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지속과 분화 과정을 전개하였다. 그 중 하나는 기존의 한양에 있었던 술집 위주의 주막이 주점(酒店) 혹은 선술집과 '밥집'으로 전문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술을 판매하면서 여자 접대부의 접대와 매춘 행위가 행해지기도 했던 색주가와 내외주점이 기존의 주막에서 분화된 점이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에서는 주막을 단지 주점 위주로 이해하여 낭만과 추억의 장소로 상징화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 낭만성은 주점이나 선술집과 같은 조선 후기 주막이 일제시대에도 어느 정도 지속된 술집과 밥집에만 해당되었다. 또 다른 분화의 결과인 색주가나 내외주점은 일제시대에 와서 사회적 퇴폐성을 조장하는 곳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주막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과정을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었다.
이와 같은 주막의 근대적 지속과 분화는 20세기 한국사회에서 음식점이 겪는 근대화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주로 도회지의 요리점과 음식점을 대상으로 근대적 법률 체제 내에 포섭시켰다. 그러면서 조선인이 운영하는 주막에 대해서는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정도의 판단을 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에는 주점ㆍ선술집ㆍ색주가ㆍ내외주점 등에 대해서 요리옥과 동일한 법률적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위생과 접대부에 대한 관리였지, 음식점의 근대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의 근대적 전문화는 1970년대 이후에 와서야 정착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음식을 주로 판매하는 음식점의 조리법이나 서비스가 매뉴얼화되지 않은 역사적 배경이다. 아울러 술집과 음식점의 분화가 분명히 일어나지 않은 점 역시, 20세기 전반기에 전근대적 주막의 지속과 그것의 퇴폐적 분화로 인해서 생겨난 결과였다.

목차

〈국문요약〉
1. 들어가는 말
2. 전근대의 주막
3. 주막의 근대적 분화
4. 근대적 법률과 주막
5. 나가는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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