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6號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171 - 209 (3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단군릉기적비」는 1920년 이후 논의ㆍ진행되어 1936년 마무리된 단군릉수축공사의 전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15세기말 『동국여지승람』에 의해 처음 주목된 단군묘에 대한 취신과 불신의 논의가 수 백 년 동안 지속되다가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수축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로 건립되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단군릉수축운동과 「기적비」의 건립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듯하다. 당초 기념비와 단군릉비 2기의 기념물이 「기적비」 1기만으로 종결된 점에서도 진행과정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단군민족주의나 부루조아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된 위인 선양 및 고적보존운동, 내선일체ㆍ동조동근론을 앞세운 식민통치자들의 목적 등이 일정 부분 개재되어 있었다.
「기적비」는 4면 모두에 글자를 새겼는데, 단군릉의 기적과 단군릉수축기성회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은 당초 계획의 단군릉비에 해당하고, 후면ㆍ좌측면ㆍ우측면은 기념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단군이 조선 역사와 문화의 시원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 내용의 대략은 고기 유형과 응제시 유형의 전승이 절충되어 있다. 이 같은 전승은 환인ㆍ환웅ㆍ환검의 존재가 三神이자 하나라는 三神-體의 신관을 가진 단군교 계열의 신관 및 역사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신교를 통한 치세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단군의 나이와 역년, 산신 시기에 대해서는 독창적이면서도 안정복ㆍ한치윤의 이해를 따르고 있어 강동 또는 평남 유림계의 전통적인 이해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기적비」에 보이는 강동군의 단군전승은 묘향산이나 구월산 계열의 전승과도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묘향산과 구월산 전승의 지역적 배경이 서북한 지역 전역에 걸쳐 있다면, 이곳의 전승은 강동군에 국한되어 있다. 이는 강동이 단군의 출생→성장→죽음에 이른 곳이라는 지역 전승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으로, 단군릉에 기초하여 강동을 전승의 중심지로 설정하려는 강동군민의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산신으로 돌아간 단군의 최후가 다시 능으로 조성된다는 것은 부조화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절충점이 衣履之葬의 전승이다. 「기적비」의 아달산신으로의 최후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이해였다. 단군교 계열의 신관과도 일정 부분 부합하는 면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조선후기 이래 전해져온 전승과 이 시기 친일성향의 단군교 계열의 영향, 그리고 역시 친일성향을 보이고 있던 강동 또는 평남유림연합회의 이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檀君陵記蹟碑」의 건립과정
Ⅱ. 「檀君陵記蹟碑」의 구성과 내용
Ⅲ. 江東의 단군전승과 「檀君陵記蹟碑」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