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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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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2號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223 - 24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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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鎌倉막부 이전부터 「海上 武士團」의 성장과 이들에 의한 해적 활동이 나타난다. 그리도 承久의 난 이후 고려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하면서 倭寇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게 되었다. 남북조 내란의 중기에 접어들면서 觀應擾亂의 발발로 九州에 내려온 足利直冬은 準將軍 권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九州를 심각한 혼란에 빠트렸다. 이때 九州의 약소 무사들과 住人들이 在地를 이탈하여 고려를 대상으로 약탈자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고려사』에 기록된 1350년의 「庚寅年 倭寇」가 그것이다.
그런데 1360년대의 소강상태를 지나 應安 4년(1371) 今川了俊이 九州探題로 내려온 다음 해부터 고려에는 왜구의 출몰이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永和 원년(1375) 了俊에 의해 少貳冬資가 피살된 다음 해부터 왜구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了俊이 九州에 내려와서 探題 專制權力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부작용, 즉 在地를 이탈한 「反探題」的 성향의 「海上武士團」과 探題의 통제에서 벗어난 해적 세력, 그리고 惡黨 세력 등의 활동 때문이었다.
그런데 13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점차로 왜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 원인은 一揆의 夜討ㆍ海賊 등의 금지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一揆는 내부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 간접 여파로 고려의 왜구 문제까지도 규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점차 고려에서 왜구 활동이 줄어들면서 왜구의 구성원이 일본 해안과 島嶼의 「うらうち(浦內)」를 중심으로 정착해 간다. 따라서 어업권 분쟁과 「浦內」의 고밀도화를 해결하고 정착하는 자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방법으로 어장을 교대로 사용하는 공동어업권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목차

요약
Ⅰ. 序論
Ⅱ. 「海上 武士團」의 활동과 倭寇의 출현
Ⅲ. 九州 政局의 혼란과 倭寇의 확대
Ⅳ. 海賊 금지와 倭寇의 감소
Ⅴ. 結論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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