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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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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47집
발행연도
2006.8
수록면
149 - 18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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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전설은 신라 36대 惠恭王 7년(771)에 鑄成되어 경주 奉德寺에 봉납된 聖德大王神鐘에 관한 우리의 대표적인 구전설화 중 하나이다.
본고는 에밀레종 전설에 숨겨진 함의를 규명하려는 작업의 첫 단계로, 기존의 諸說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관련 학계는 에밀레종 전설을 人命을 희생시켜 絶對者, 혹은 신적 존재를 감동시켜 소망을 이루려는 人身供犧談, 자식이 부모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숭고한 孝行談, 혹은 불교의 捨身功德 이야기 등으로 이해해 왔다. 모두가 전설의 내용이 實話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그러나 당대의 정치상황이나 사회적 조건, 혹은 설화의 생산과 유통, 전승의 메커니즘을 무시한 억측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첫째, 신라사회는 22대 智證王 3년(502)에 殉葬을 금한 이후 인신공희가 공공연히 자행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둘째, 아이의 희생은 不殺生이라는 불교의 핵심적인 戒律을 부정하는 근친에 의한 살상행위일 뿐이다. 셋째, 붓다의 大慈大悲를 표상하는 梵鐘과 아이의 죽임은 절대적 모순관계에 있다. 넷째, 당시의 용광로 크기는 현대와 달리 초소형이어서 살아 있는 아이를 희생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렇게 볼 때 에밀레종 전설은 실화가 아니라 전래의 인신공희 풍습에 빗대어 당대의 정치적 비극을 담지한 고도의 문학적 메타포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서라벌 사람들이 직접 목도한 중대신라(654-780)의 몰락에 얽힌 정치드라마를 설화형식으로 가공한 결과물이라는 게 본고의 추론이다. 필자는 본고에 이어 혜공왕의 죽음과 연관 지어 에밀레종 전설의 실체적 진실을 정치적 관점에서 규명하는 별도의 논고를 발표할 예정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심는 글
2. 에밀레종전설의 채록 및 유형
3. 기존 해석에 대한 비판
4. 거두는 글
Abstract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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