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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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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3號
발행연도
2006.9
수록면
115 - 15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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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세기 이후 ‘단종복위운동’ 참여자의 복권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이 갖는 정치사 내지는 정치사상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종복위운동’ 참여자의 복권 논의는 15세기 후반 이래 제기되었는데, 특히 당시 새롭게 진출하던 사림세력을 중심으로 거론되었다. 사림세력의 주장에 대해 국왕을 비롯한 공신세력의 입장은 신중론 내지는 유보론으로 나타났다. 이런 신중론 내지 유보론은 선왕대 결정된 사안을 번복했을 때 가져올 정치적 여파를 의식한 것이었다.
17세기에는 대체로 사림계 신료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선조대 박계현이라든지, 효종대 조경이나 송준길 등이 이에 해당되며, 『노릉지』의 편찬과정에서 송시열이나 김상헌을 비롯해 박세채 등 당대 대표적 유학자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들이 ‘단종복위운동’ 참여자에 대해서 복권을 거론하는 것은 節義精神의 표방이었다. 반면 국왕이나 국왕의 측근 인사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특히 선조의 경우는 『육신전』에 대해서 소각하려는 의도까지 비추었음은 이를 반영한다.
숙종대 이후 이런 양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논의 자체가 국왕주도하에 이루어졌다. 六臣 복권을 비롯해 상당수의 복권 조치들이 그러하였다. 이는 君臣分義 확립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왕권 강화의 논리였다. 영조가 강조한 君父一體論은 이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정조대 이후에는 그 대상층이 이전보다 확대되었는데, 이는 정조가 자신의 정치 기반 확대를 위해 지방사족을 육성하려는 정책의 연장이라고 파악하였다. 즉 정조는 종래까지 거론되지 않았던 ‘단종복위운동’ 참여자의 신원이나 복권 등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후손들과 관련인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하였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16세기 ?? 論議의 擡頭
Ⅲ. 17세기 復權 論議의 公論化 過程
Ⅳ. 18세기 復權의 實現 過程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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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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