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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김리향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임동균
발행연도
2022
저작권
서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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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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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의 소수민족 사회가 같은 민족정책 아래 서로 다른 모습으로 경계를 형성해 온 원인, 즉 차이를 낳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답하기 위하여 중국의 조선족, 몽골족 그리고 위구르족 세 소수민족 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과정추적법을 사용하여 민족교육제도에 따라 민족학교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나아가 제도적 요인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 특히 정책의 방향과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들은 종교, 언어, 문화 등 상징적 경계와 자원(경제 수준, 모국과의 네트워크, 집거수준 등 지역적 맥락)의 복합적 작용의 결과라고 보았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시기 별로 제도와 경계 변화의 관계를 아래와 같은 네 가지 가설로 설정하였다. 가설 1: 민족교육 지지 정책은 민족경계 형성의 기초로 작용하였다. 가설 2: 민족교육 제도의 부재는 민족경계의 와해를 낳았다. 가설 3: 이중언어 교육정책의 발단은 민족경계의 재건을 촉진하였다. 가설 4: 이중언어 교육정책의 심화는 민족경계의 공고화를 이끌었다. 가설 검증은 발견된 증거들이 가설을 지지하는 정도를 충분성과 필요성에 따라 검증하였다.
2장에서는 본 논문의 제도적 배경인 중국의 민족교육정책을 소개하였다. 정책의 변화를 1949년부터 1956년까지 정책의 형성, 1957년부터 1976년까지 부재,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민족교육정책의 회복 그리고 1992년부터 지금까지 민족교육정책의 변형 네 단계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정책의 형성 단계는 ‘민족구역자치제도’라는 거시적인 민족정책 아래, 각 민족은 자치지역 안에서 민족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마련하는 시기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 정책의 부재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두 가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의 결과로 소수민족의 민족성이 부인되고 민족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무너진 것을 가리킨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민족교육정책도 회복의 시기를 맞이한다. 중국 정부는 민족학교의 교과과정부터 소수민족 학생들의 대학입시 가산점 등 문제에 대해 보다 명확한 정책과 규정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1992년 이후 오늘날까지 민족교육정책은 앞의 단계와 다소 다른 모습으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이중언어 교육체계’의 발단과 함께 민족학교의 ‘한어’와 ‘민족언어’ 수업의 설정, 교재 내용의 변경, 대학입시에서 ‘한어’ 시험의 변화 등 면에서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3장에서는 정책의 변화 시기에 따라 민족 경계가 변화하는 시기를 구분한 뒤, 각각의 가설과 연관되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각 민족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충분성 및 필요성의 측면에서 증거의 증명 가치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네 가지 가설에 대한 검증을 종합적으로 토론하고 분석 결과가 이론적 배경과 어떻게 맞물리며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가설인 ‘민족교육 지지 정책은 민족경계 형성의 기초로 작용하였다’와 두 번째 가설 ‘민족교육 제도의 부재는 민족경계의 와해를 낳았다’에 대한 검증을 통하여 세 집단에서 모두 제도가 경계 형성 및 해체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확인함으로써 제도는 민족경계가 변화하는 초기설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중국 건국 초기, 민족교육의 틀이 이미 형성된 민족(조선족, 몽골족)이든 또는 민족학교 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민족(위구르족)이든 막론하고 국가의 정책적 영향력만으로 민족학교 교육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기반을 닦은 것도 국가의 정책이고 그것을 단기간에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것 역시 제도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설 3 ‘이중언어 교육정책의 발단은 민족경계의 재건을 촉진하였다.’와 가설 4 ‘이중언어 교육정책의 심화는 민족경계의 공고화를 이끌었다.’에 대한 검증을 통하여 민족의 사회적 경계 변화는 제도적 요인 외에 민족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상징적 경계에 따라 다르게 변화한다는 것을 검증하였다. 그 가운데서 조선족의 경우 자원과 상징적 경계가 함께 작용하여, 기존의 집거지역에서의 경계는 해체되는 동시에 새로운 집거지에서 다시 경계를 형성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몽골족의 경우 상징적 경계보다 자원에 의한 경계 변화가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위머(Wimmer)의 주장??“제도는 개인이 민족경계를 선택할 지의 여부에 인센티브를 준다.”??도 확인할 수 있다. 위구르족의 경우 역시 상징적 경계와 자원의 영향이 경계 변화에 함께 작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족 사회는 상징적 경계와 사회적 경계 간의 상호 작용 및 강화가 확인되었다면, 위구르족은 상징적 경계와 자원이 상호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즉 위구르족은 뚜렷한 상징적 경계와 자원의 제한으로 인하여 민족경계 안에 머무르게 되고 경계 안에 머무르다 보니 집거 정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그 지역에서 갖고 있는 파워가 커지고 이것이 경계를 더 뚜렷하게 하는 패턴을 보였다.
종합하면 중국의 소수민족 사회는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까지 제도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따라서 이 시기 민족경계의 변화는 제도적 변화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특히 개혁개방과 함께 민족사회의 자주성이 확대되면서 제도적 작용력보다는 민족사회가 갖고 있는 상징적 경계, 경제적 수준 또는 모국과의 네트워크 등에 의한 선택의 결과가 경계 변화를 낳는 주요 원인임을 확인하였다.

목차

제 1 장 서론 1
제1절 문제제기1
제2절 선행연구 및 이론적 배경 4
1. 선행연구 4
2. 이론적 배경9
제3절 논문의 이론틀 및 구성 15
1. 제도, 자원 그리고 민족경계 16
2. 중국 소수민족의 상징적 경계와 사회적 경계 19
3. 경계의 변화와 재생산 20
제4절 연구 대상 및 방법 21
1. 연구 대상 21
2. 연구 방법 21
제 2 장 중국의 민족교육정책 30
1. 1949년-1956년: 정책의 형성 30
2. 1957년-1977년: 정책의 부재 32
3. 1978년-1992년: 정책의 재건 33
4. 1992년-현재: 정책의 변형 34
제 3 장 중국 소수민족 사회의 경계 변화 36
제1절 조선족 사회의 경계 변화 36
1. 1940년대 말-50년대 중반: 경계 형성 36
2. 1950년대 말-70년대 중반: 경계 수축 41
3. 1970년대 중, 후반-2000년대 초반: 경계 재건 45
4.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 경계 이동 49
제2절 몽골족 사회의 경계 변화 52
1. 1947년부터 1956년: 경계 형성 52
2. 1958년부터 1976년: 경계 축소 55
3. 1978년부터 2000년대 초반: 경계 재건 57
4.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 경계 흐림 60
제3절 위구르족 사회의 경계 변화 63
1.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 경계 형성 63
2. 1970년대 중,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경계 확장 68
3.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 경계 유지 73
제4절 검증 결과 종합 및 토론 78
1. 가설1 검증 결과 종합 78
2. 가설2 검증 결과 종합 79
3. 가설3, 가설4 검증 결과 종합 80
제4장 결론86
참고문헌90
Abstract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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