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이후 인도네시아의 자연재해와 인도네시아인의 자연재해 인식을 역사적, 인류학적 그리고 개발학의 관점으로 조사하였다. 연구의 목적은 인도네시아 역사 속의 주요 자연재해와 인도네시아인의 재해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여,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도적 지원의 선택적 수용을 시행한 배경을 알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인도적 지원의 현지화 방안을 제시한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재청의 공식적인 기록이 있는 1815년 숨바와섬 탐보라 화산 폭발 사건부터 2018년 술라웨시 섬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재해까지이다. 보관된 자료와 문헌 조사를 통하여 과거의 재해 사건과 재난 인식을 조사한다. 탐색적 연구를 위한 공간적 범위는 자카르타, 발리 섬, 롬복 섬으로 2차례의 현지조사와 설문조사, 심층 면접, 사례연구와 관찰연구를 하였다.
인도네시아 군도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150개 이상의 활화산이 있어 과거로부터 다양한 자연재해를 경험하였다.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은 전 세계 기후에 영향을 미쳐 19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재해로 기록되었고, 1883년 크라카타우 섬의 화산 폭발과 재난 상황은 전 세계에 재난 연구의 중요성을 알린다. 인도네시아는 과거의 반복되는 경험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인식이 지역의 정치적, 전통적, 종교적 믿음에 따라 대비와 대응 방법이 달라진다.
인도네시아의 고유한 관습, 아닷(adat)은 악의적인 영혼으로 가득한 우주에서 개인과 사회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관이다. 악의적인 영혼은 지진, 화산 폭발, 태풍,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현상을 명령할 힘을 가지고 있다. 아닷은 이러한 재난의 위협에 타협하려고 노력하는 방법으로 슬라마탄(Selamatan)을 치르고 서사젠(Sesajen)을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 인도네시아의 힌두교에서는 비의 존재, 나무가 쓰러지는 현상, 땅의 움직임, 화산의 분화는 니스칼라로 알려진 신령과 연관된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이슬람에서 자연재해는 “알라의 벌”이란 의미로 발생한다. 자연재해와 기후 변화에 대한 종교적 세계관은 이슬람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신의 형벌, 축복의 철회라는 이유로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이 주신 형벌을 운명적,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며 대피하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재난에 대한 종교적 인식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재해 인식분석에도 나타났다. 자연재해 발생 요인이 환경오염 다음으로 신의 뜻이 평균 3.7로 가장 많았고, 재해 발생 전 신전에 가서 기도한다는 답변이 가장 높게 조사되었다. 또한, 심층 면접에서 응답자는 “자연재해는 신(Tuhan)의 뜻”이고, “재난대비를 위해 신전에 가서 기도를 드린다.” 라고 답하였다.
네덜란드 식민지배를 받던 19세기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의미는 미미하고, 네덜란드 정부의 재난 대응은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활동보다는 식민지의 경제적 투자와 자국민을 위한 지원이었다. 종교 단체의 모금 활동과 기부는 인도네시아인에게 개종을 요구하였고, 의료서비스와 보건활동은 식민지 노동자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945년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난관리체계를 설립하지만, 빈번한 자연재해 발생과 재해예측 기술 및 자금 부족으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도적 지원 행위자들이 현지 능력과 정치 구조를 무시하고, 문화적 감수성이 부족한 일방적인 지원을 시행한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발생 이후 국제사회의 “문화적 이해 없는 원조” 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재난예측에 대한 기술발전의 필요성과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8년 8월 롬복 섬 지진 발생 이후 지역사회에 국제원조를 요청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9월 술라웨시 섬에 지진과 쓰나미 발생 후 “술라웨시 주(州)의 지원을 목표로 하는 INGOs 규정”을 발표하여 국제원조에 대한 제재와 인도적 지원에 대한 선택적 수용을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의도는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훈련되지 않은 비전문적인 국제원조 기구 및 단체의 지원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인력만 수용하여 효율적인 구호 활동을 위함이다. 국제사회는 인도네시아 고유의 “재난 인식과 대응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형태의 인도적 지원의 개념과 방법으로 “인도적 지원의 현지화”를 제시하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재난관리와 지원방안이 논의된다.
지역 기반의 인도적 지원기관과 행위자는 현지의 사정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고, 피해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가지고 지역민의 신뢰를 받고 활동한다. 국제사회 행위자는 언어 문제로 통역이 필요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상황 전달과 조정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경영관리와 자금조달에 대한 접근성이 현지행위자보다 쉽고, 긴급구호의 경험이 많은 전문 인적자원이 풍부하다. 인도네시아의 인도적 지원의 현지화를 위해서는 전문 인력양성, 자금조달 접근성, 인도적 물류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인도네시아의 재난과 문화를 이해하고 인도적 지원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의 현지화” 방안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고, 현지화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 국제기구, 국제 비정부기구, 인도네시아 비정부기구의 협력과 조정이 중요하다. 2020년 전 세계는 COVID-19 질병으로 국제 인도주의 행위자의 현지 지원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의 현지화는 발전되어야 하며 추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