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공교육에서의 미술 교육은 학생들에게 풍요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미술이 지닌 외재적 가치보다 내재적 가치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미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심미적 정서와 가치 감각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 수업은 아직도 ‘미술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하며 ‘학생들의 느낌’을 풍요롭게 하는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미술 수업이 ‘더 깊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우선 미술 수업의 기반이 되는 철학과 지각론의 수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미술 수업은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수용한 감각지각을 전제하는 근대적 지각론을 기반으로 표현과 감상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감각지각을 존재하게 하는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비감각적 지각’에 집중하며 이 또한 미술 수업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비감각적 지각’은 ‘감각적 지각’의 이면에 있는 더 넓은 영역으로 지각의 근원이며 신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각의 양태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지각론을 통해 이러한 지각이 중점적으로 일어나는 교육의 리듬의 로맨스 단계를 살펴봄으로써 ‘학생들의 느낌’이 중심이 되는 미술 수업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화이트헤드의 지각론을 기반으로 미술 수업에서의 로맨스 단계의 지각 구조를 살펴보고 ‘로맨스 단계를 활성화하는 핵심 요소들’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확인한 로맨스 단계의 핵심 요소는 첫째 학생들의 신체이다. 신체는 우리를 둘러싼 가장 직접적인 환경이며 수많은 느낌들이 전달되고 통합되며 증폭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물리적 느낌을 제공하는 환경이다. 학생들은 자신에 앞서 존재하는 다른 결합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내적 구성요소가 되도록 통일해 나가면서 스스로 존재한다. 이때 교사는 학생들의 느낌의 여건이 될 수 있는 수업 환경을 조성하면서 학생들의 느낌에 개입하는 것이다. 셋째 핵심 요소는 학생들이 새로움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지각의 오류이다. 오류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진보를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로맨스 단계에서 인과적 효과성과 현시적 직접성 사이의 상징적 간극으로 생기는 된다.
이렇게 도출한 로맨스 단계의 핵심 요소들을 바탕으로 로맨스 단계가 활성화된 미술 수업을 하는 교사 3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질적 사례 연구 방법으로 일 년 반 동안 교사 3인의 수업을 참관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사례 연구를 통해 우선 미술 교사 3인의 수업에서 ‘교육의 리듬’의 로맨스 단계는 정밀화와 일반화 단계와 어떻게 중첩해서 작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수업에서 로맨스 단계를 활성화하는 핵심 요소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미술 교사들의 대단원 수업과 각 차시별 수업 과정에서 ‘교육의 리듬’의 큰 사이클과 작은 사이클이 중첩해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로맨스의 단계 또한 중첩해서 존재하며, 한 차시 수업에서 한 개뿐만이 아닌 여러 개의 로맨스 단계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술 교사 3인은 각자의 방식대로 학생들의 신체를 고려하며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고, 새로움과 상상력을 위한 오류를 끌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설정해 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확인한 미술 교사 3인의 수업에서 로맨스 단계를 활성화하는 공통적인 방법을 찾아서 분류하였다. 첫째, 교사 3인은 학생들의 신체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풍요로운 매체와 수업 환경을 제공하고, 동료 학생들이나 교사를 통해서도 물리적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둘째, 교사들은 학생들의 새로움과 상상력을 불러오기 위해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다양한 장치를 숨겨놓고 있었다. 그 장치들은 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물리적 환경을 제한하거나 학생들이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이나 친구들의 활동 결과를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었다. 셋째, 교사들은 장치를 숨겨놓은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사들은 수업을 치밀하게 계획하면서도 수업 과정에서는 학생들의 개별적 느낌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반응을 고려하며 수업을 조금씩 수정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교사들에 의해 제공된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미술 수업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비감각적 지각’의 영역을 다루기 위한 핵심 요소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화이트헤드가 The Aim of Education에서 중요하게 언급했지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던 로맨스 단계를 활성화하는 수업 방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 공교육에서의 미술 교육이 학생들에게 더 깊은 느낌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어떻게 변화해야하는지, 미술 교사는 수업에서 어떠한 요소를 더욱 중점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공교육에서의 미술 수업이 ‘작품 제작’이 아닌 ‘학생들의 느낌과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