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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전은주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정명교
발행연도
2019
저작권
연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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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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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중 수교 이후 재한 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았다. 이 연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디아스포라로 살아왔던 재중 조선족 집단의 한국으로의 이주가, 외적으로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국제적 노동이주의 성격을 띠지만, 내적으로는 ‘디아스포라의 귀환’이라는 모국과의 민족적 차원의 유대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디아스포라는 이주지에 정착하려는 것과 모국과 연결을 강화시키는 것, 이‘이중적 욕망’또는 ‘사이성’을 지니는데, 이는 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항목이 된다.
본 연구는 디아스포라의 최초의 이주가 ‘집’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이 ‘귀환’하고자 하는 곳이 지리적 ‘공간’인‘고향’이 아니라 문화적 총제로서의 ‘장소’인‘집’이라는 점에서, ‘고향 찾기 욕망’과 ‘집 찾기 욕망’은 구별된다. 그러나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이 두 욕망을 동일하게 설정하고‘귀환’했기 때문에, 욕망의 달성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네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첫째,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중국 이주와 정착, 그리고 한국으로의 귀환의 역사성을 통해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조선인에서부터 중국 조선족으로 규정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에서 겪은 ‘고향상실’의 아픔을, ‘상상속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귀환의 욕망’을 증폭시킴으로써 스스로 위안 받았다. 또한 그들은 이주지에서 겪은 두려움과 소외감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전환하여‘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정치적으로 공인된 ‘집’인‘조선족 공동체’를 구축한다. 그리고 그들은‘민족 정체성’을 계승-발전시켜 그것을 ‘정신적 존재감’으로 삼았다.
둘째, 한중 수교 이후 그들은‘상상속의 고향’인 한국으로 귀환하지만‘낯선 한국인’의 차별과 냉대를 통해 ‘낯선 고향’인 모국에서 ‘정체성의 혼란’에 직면한다. 그들은 중국에서 반세기 이상을 사회주의 계획경제 국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데올로기의 장벽으로 왕래가 없었던 오랜 세월의 간극은, ‘상상속의 고향’에 대한 환상이나 감상적인 민족 개념으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루려던 한민족으로서의‘자격 회복’과 자본주의의 체제에 진입하려던 ‘자본의 욕망’이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들은 모국에 대한‘그리움’이 환상이었음을, 그들이 찾고자 했던 ‘고향’과 ‘(고향)집’이 모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집의 부재’를 실감한다.
셋째, 이주 3,4세대인 그들은 모국에서‘집 찾기’ 욕망이 좌절된 후, 많은 조선족들이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실재 고향인 연변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연변에서도 ‘집 찾기’에 실패한다. 그곳의 ‘집’은 이미 ‘추억속의 집’일 뿐이었다. 연변의 이웃들은 오래 전에 ‘(고향)집’을 찾아 떠났고, ‘조선족 공동체’도 해체되어 ‘기괴하고 낯선 고향’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들이 모국에서 번 돈으로 산‘비싼 아파트’도 가족들이 살지 않는 ‘빈 집’일 뿐이었다.
넷째, 그들은 모국과 연변에서 ‘고향과 집의 해체’와 ‘조선족 공동체의 해체’를 실감하고 새로운 ‘집 찾기’또는 ‘집 짓기’를 시도한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된다. 몇몇 시인들이 올바른 현실인식을 통해 ‘자아성찰’과 더불어 실천적인 시적 대응을 시도한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내적귀인(內的歸因)’의 대응으로 시작된다. 시인은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을 자기 자신과의 ‘말 걸기’와 ‘답 하기’의 형태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객체화시키는 것에서 각각 출발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타자화’가 한국인이 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적극적인 말 걸기’와 자신을 성찰하는 ‘시 쓰기’등의 실천적 대응을 통해 자신들의 위상을 스스로‘타자’에서부터 ‘주체’로, 모국사회에 대한 태도도 일방적인 ‘기대’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로 시작하는‘관심’으로 전환시켰다. 이를 통해 모국사회의 ‘분단 트라우마’와 만나 그들의 차별과 냉대를 이해하면서, 한국인들과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타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의 첫걸음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갈등의 원인 중의 하나가 각기 지닌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과 한국인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모든 ‘낯선 대상물’에서 ‘친숙한 것’을 찾아내어,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꿔 불안정한 ‘공간’을 안정적인 ‘장소’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 ‘장소’는 그들이 성공한 ‘집 찾기’가 된다. 이때 그들의 ‘집’은 긴 디아스포라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지을 수 있는 인식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고향 만들기’와‘집 짓기’를 할 수 있다는 자각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조선족 디아스포라 전체에 확산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혁신의 시작은 언제나 일부 선각자들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혁신의 시발이 재한 조선족 시인의 시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재한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대림동 등지에서 짓고 있는 마을과 집이 그들이 찾아 헤매던 그 ‘고향’이며 그‘(고향)집’이며, 그들이 이루어야 할 ‘공동체’라는 사실을 그들이 자각하게 됨으로써, 그 자각의 힘이 ‘정체성의 재정립’으로,‘아비투스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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