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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송하경
발행연도
2017
저작권
성균관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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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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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亂世인 朝鮮朝 末 王室家 인물 중에서 정치가·碩學이면서 書畵藝術家의 삶을 살았던 李昰應·閔泳翊·尹用求의 書畵創作에 깃든 審美意識을 연구한 것이다. 조선조말 종실 삼인은 망국이란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망국에 대한 분노와 한탄을 서화창작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삼인의 예술사상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그들이 儒者라는 관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삼인의 예술창작은 달라진 시대만큼 자신들의 예술정신을 표출하고자 했던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삼인의 예술창작에 담긴 예술정신에 대한 철학, 미학적 관점의 분석이 요구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들 삼인의 서화예술창작에 담긴 예술정신을 철학과 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본고는 이 같은 점을 특히 甲申被禍 전과 후의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고찰하였다. 갑신피화 전과 후로 나누어 기술하는 것은 갑신피화 전과 후로 삼인의 예술창작 경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첫째, 석파 李昰應 서화의 甲申被禍 前·後의 창작 경향을 정리하여 본다.
석파의 갑신피화 以前의 서화창작은 學藝와 修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갑신피화 以後에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역경을 거치면서 황혼 길에 들어선 석파는 서화창작에서 性靈·無心·虛和의 心學的이고 禪家的인 審美境界를 드러내어 이전과 차별을 보인다. 석파는 정계에서 하야하고 양주 직곡에서 머무는 동안에 많은 창작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심경을 담은 露根蘭과 荊刺蘭을 화폭에 담는다. 석파는 갑신피화 이후 本來面目으로 돌아가 明心見性하고자 하였고, 아울러 인생의 至難한 역경을 붓의 강한 氣勢와 거침없는 붓놀림을 통해 화폭에 표출하고자 하였다.
둘째, 芸楣 閔泳翊 서화의 甲申被禍 前·後의 창작 경향을 정리해본다.
갑신피화 이전의 운미 민영익 서화는, 隱顯이 動靜雙暢하면서 妙合을 이루는 예술창작으로 표출되었다. 胸中에 담긴 筆意는 遊心의 경지를 지향하며 그것은 自樂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갑신피화 상황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운미는 명성황후의 시해 이후 더 이상 제대로 운신할 수 없는 상황을 ‘不狂不及''하는 露根蘭과 懸崖蘭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른바 發憤著畵의 경향을 띠게 되는데, 운미의 서화창작은 도리어 天眞自然의 蒼秀逸氣를 담아낸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운미는 이처럼 자신의 예술창작을 眞心生氣의 심미경지를 담아내는 것으로 표출하였다.
셋째, 石村 尹用求 서화의 甲申被禍 前·後의 창작 경향을 정리해본다.
갑신피화 이전의 석촌 윤용구의 서화는 ‘溫故而知新’과 ‘積學以儲寶’의 사유를 통한 典雅·平淡의 ‘思無邪’와‘文質彬彬’지향의 예술창작으로 나타났다. 이런 창작 경향은 ‘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이르고자했다. 갑신피화 이후 석촌은 ‘隱居求志’의 삶을 살고자 하였다. 이에 神韻이 깃든 發憤著畵 의식은 노근란·도수죽·현애란 등 毅氣가 가득찬 奇怪境으로 절절하게 체현되었다. 이렇게 발분하여 기괴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遷想妙得의 예술창작 정신은 敬畏와 灑落을 묘합하는 삶을 살고자하는 석촌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요컨대, 조선조말 왕실서화가 삼인은 자신들이 살고자 했던 삶을 서화라는 도구를 통해 담아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암울한 시기에 처한 이들 삼인이 행하고자 한 발언이 그 서화창작에 담겨 있다. 몸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현실적 상황에서 그들은 서화창작을 통해 자신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露根蘭·倒首竹·荊刺蘭과 같은 다양한 형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히 다양한 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저항정신과 예술정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서화창작은 발분의식을 드러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인의 墨跡은 후대의 김응원·김규진·서병오 등에게 이어져 근·현대 서화·미술계의 典範이 되었다.

목차

Ⅰ. 序 論 1
1. 硏究目的 1
2. 硏究方法 4
Ⅱ. 甲申被禍 以前 書畵의 審美 理想 11
1. 石破 書畵의 審美理想 11
1) 不欺自心의 學藝一致的 審美理想 12
2) ??爲誠의 修己治人的 審美理想 36
2. 芸楣 書畵의 審美理想 48
1) 隱顯妙合의 動靜雙暢的 審美理想 49
2) 發情止義의 中節遊藝的 審美理想 56
3. 石村 書畵의 審美理想 60
1) 積學儲寶의 典雅爲美的 審美理想 62
2) 簡易淡泊의 平淡爲實的 審美理想 70
Ⅲ. 甲申被禍 以後 書畵의 審美體現 76
1. 石坡 書畵의 審美體現 76
1) 生得性靈의 天機自發的 審美體現 77
2) 無心境界의 心卽是禪的 審美體現 100
3) 興趣境界의 偶然欲書的 審美體現 118
2. 芸楣 書畵의 審美體現 130
1) 天眞自然의 素心自照的 審美體現 131
2) 蒼秀逸氣의 無爲天作的 審美體現 138
3) 眞心生氣의 得意筆之的 審美體現 149
3. 石村 書畵의 審美體現 166
1) 毅氣發憤의 神韻境界的 審美體現 170
2) 美醜兼有의 奇怪境界的 審美體現 177
3) 敬畏·灑落妙合의 脫塵境界的 審美體現 193
Ⅳ. 結 論 218
참고문헌 225
ABSTRACT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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