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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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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이장훈 (고려대학교, 高麗大學校 大學院)

지도교수
邊英燮
발행연도
2013
저작권
고려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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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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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무라 치쿠덴(田能村竹田, 1777-1835)은 지금의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縣) 출신의 문인화가이다. 그는 본래 醫師를 직업으로 한 武士집안 출신으로 당시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던 藩校 유가쿠칸(由學館)에서 학문을 배우고 22세가 되던 해부터는 儒學者로 근무하였다. 由學館은 반주자학 계열인 소라이학(?徠學)을 중심으로 학문이 이루어지는 기관이었다. 소라이학은 明代 古文辭派인 王世貞과 李攀龍 문집의 영향을 받은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8)에 의해 창시된 古文辭學적 방법론의 학문이다. 이러한 환경은 타노무라 치쿠덴의 회화 경향에서 의고주의적 태도가 지속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회화로 분류되는 카노파(狩野派)와 토사파(土佐派)가 幕府의 어용화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회화는 南畵의 유행과는 별개로 성행하며 전개되었다. 에도(江?)를 중심으로 한 關東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이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 지역의 문인화는 關西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적 색채가 더 가미된 화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타노무라 치쿠덴은 중국 남종문인화를 회화적 지향점으로 삼은 화가였기 때문에 그의 회화에서 이 지역 회화의 영향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여행 역시 에도에 한 차례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여행의 목적지가 關西지역이었기 때문에 타노무라 치쿠덴 회화의 영향관계는 주로 關西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關西지역 문인화의 영향을 중심으로 타노무라 치쿠덴의 회화 전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타노무라 치쿠덴은 1801년을 시작으로 일생동안 총 12번에 걸쳐서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한 關西지역을 여행하였다. 당시 關西지역은 한문학과 막부의 관학으로 숭상되었던 주자학이 유행한 중심지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明代 蘇州지역에 연원을 둔 문인문화가 유행한 곳이었다. 그리고 문인문화 향유의 중심에는 시문 관련 모임인 콘톤시샤(混沌詩社)를 결성한 기무라 켄카도(木村??堂, 1736-1802)가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신분계층상에서 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대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인문화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에 의해 향유되었다. 문인문화를 향유한 계층 중에는 서민에 해당하는 쵸닌(町人)이 많았는데 그들은 ‘讀書人’이라는 문인의 본질적 개념에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關西지역의 회화는 나가사키(長崎)를 통해 유입된 중국의 여러 화보와 渡日한 淸代 화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江蘇省과 浙江省 출신의 상인 혹은 군소화가였다. 關西지역 화가들은 이러한 영향을 바탕으로 江蘇省과 浙江省에서 유지되어온 吳派 및 四王화풍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노무라 치쿠덴은 이러한 배경을 통해 그의 화론과 회화를 전개하였다. 우선 화론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학문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소라이학파 학자들에 의해 교육이 주도되었던 藩校 由學館에서 그는 근본적으로 의고주의적인 태도를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1800년대 초반의 關西지역 여행에서 袁枚(1716-1797)의 성령설을 접하였다. 소라이학의 의고주의와 성령설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는 문학 ? 사상사조이지만 타노무라 치쿠덴은 이를 절충적으로 수용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의 절충적인 태도는 1806년에 사사했던 무라세 코우테이(村??亭, 1744-1819)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즉 타노무라 치쿠덴은 절충적인 학문관을 바탕으로 學古를 통한 성령의 고취를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한편 타노무라 치쿠덴은 董其昌과 그를 계승한 四王畵派의 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이는 18세기 關西지역을 대표하는 화가인 기무라 켄카도(木村??堂, 1736-1802) 등의 시각과 차이를 보인다. 기무라 켄카도는 남북종론을 宋 ? 元代의 회화를 북종화, 明 ? 淸代의 회화를 남종화로 구분하는 등 중국과 조선의 남북종론에 대한 시각과는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타노무라 치쿠덴은 남북종론의 구분을 書卷氣 등 문인의 성립요건에 두었으며 동시에 상남폄북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18세기의 화가들보다 남종문인화의 보편적 특성에 더욱 주목한 것이다. 더불어 四王畵派가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 필묵론을 수용하여 필묵의 운용을 통한 意의 고취를 목표로 하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袁枚 성령설의 영향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리고 타노무라 치쿠덴에게 意의 고취란 自娛를 위한 것이었으며 自娛에는 실경을 바라보며 느낀 詩想과 이를 표현한 시화일치, 그리고 知友와의 교유를 상징한 그림이 포함된 것이었다.
이렇듯 타노무라 치쿠덴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회화는 自娛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노무라 치쿠덴은 이를 위한 방편으로 18세기 關西 문인화풍을 계승하는 가운데 淸代 四王계열의 회화를 수용하였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필묵법을 발전시켜 自家畵法을 완성하였다. 타노무라 치쿠덴의 18세기 關西 문인화 계승에는 처음 關西지역을 여행한 1801년 오사카에서 기무라 켄카도, 오카다 베이산진(岡田米山人, 1744-1820)과 만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18세기 關西지역을 대표하는 문인화가들이다. 타노무라 치쿠덴은 이들과의 교유를 통해서 중국 강소성과 절강성 출신인 渡日 淸代 화가들의 화풍을 접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화풍의 영향을 받은 기무라 켄카도와 오카다 베이산진의 회화를 계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화론 면에서는 18세기 화가들에 비해 중국 문인화론의 보편성에 더 주목하는 등 시각 차이를 보이는 반면 회화 제작에서는 그들의 화풍을 계승하며 자가화법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1813년 藩으로부터 공식적으로 隱居가 허가된 이후 타노무라 치쿠덴은 자유롭게 각 지역을 오가며 飮茶, 雅會 모임 등 문인 취향을 향유하게 된다. 그리고 1823년 교토(京都)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기 전까지 규슈(九州)에 머무르며 다양한 필묵법을 구사하고, 화보를 임모하는 등 화법에 대한 모색을 하였다. 이 시기의 회화는 이후 그가 지속적으로 사용할 필묵법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823년의 교토(京都) 여행은 타노무라 치쿠덴의 회화 전개에서 기점이 된다. 이전까지의 關西지역 여행은 타노무라 치쿠덴이 關西지역의 학예 경향을 습득하며 자신의 文雅함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었던 반면 이 시기의 여행은 교토(京都)에 ‘愛山行寓’라는 자신의 거처를 마련한 뒤 주도적으로 교유관계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1822년의 타카하시 소헤이(高橋草坪, 1803-1835), 1824년의 호아시 쿄우(帆足杏雨, 1810-1884)를 그림 제자로 받아들이는 행적이 보이는 점에서 타노무라 치쿠덴의 회화가 일정 경지에 올랐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타노무라 치쿠덴은 1826년 나가사키(長崎)에서 2년 여 동안 머무르며 나가사키로 들어온 淸代 문물을 견문하며 나가사키 문인 및 淸人들과 교유를 가진다. 이 여행에서 淸代 회화를 견문한 이후 그는 四王畵派의 영향을 받아 대경산수화를 그리며, 실경에서 느낀 詩想을 이전 시기에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였던 필묵 위주의 自家畵法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생애 후반부에 해당하는 1830년을 전후해서 그린 실경산수화와 라이 산요(?山陽, 1781-1832), 아오키 모쿠베이(?木木米, 1767-1833)와 같은 知友들을 상징하는 그림에서 잘 드러난다. 즉 1826년 이후 1835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제작된 그의 회화는 自娛를 위한 회화였으며 이를 위해 사용한 필묵법을 주요 특징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타노무라 치쿠덴의 화론과 회화는 渡日한 淸代 화가들과 18세기 關西지역 문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계승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공유된 남종문인화의 보편적 특성인 詩畵一致, 自娛를 위해 자신만의 필묵법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완성시키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關西지역 문인화단과의 교유는 그의 회화가 전개되는데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타노무라 치쿠덴을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성행한 일본 문인화 속에서 가장 ‘보편적 의미의 남종문인화를 완성시킨 화가’로 거듭나게 하였다.

田能村竹田(1777-1835)は、現在九州の大分?出身の文人?家である。彼は本?、?師を家業にする武士家の出身で、?時、地元の?育機?にあたる藩?の由?館で?問を?えられ、22?になった時からは儒?者として勤め始めた。由?館は反朱子?系の?徠?を中心にする?問を?究する機?であった。?徠?は、中?の明時代の古文?派だった王世貞と李攀龍の文集の影響を受けた荻生?徠(1666-1728)によって創始された古文??的な方法論の?問である。このような環境は、田能村竹田の?の傾向で擬古主義的な態度だ?けて表れる一つの要因として作用した。
田能村竹田は1801年から、一生にわたって、京都と大阪を中心にする?西地方を計12回、旅をしていた。?時の?西地方は、漢文?と、幕府の官?として?められた朱子?が大きく盛んでいて、このようは好?風潮を背景にして、明時代の蘇州地方に源を置いた文人文化が流行になっている所だった。そして、文人文化を享有する人たちの中心には、詩文?連の集まりである混沌詩社を結成した木村??堂(1736-1802)がいた。?時日本では、身分階層上で文人といえる士大夫階層が存在しなかったため、文人文化はさまざまな階層の人物によって享有された。文人文化を享有した階層の中には、庶民に?たる町人が多くいたが、彼らはこそが’?書人’という文人の本質的な?念に近い人物だった。そして、彼らによって主導された   ?西地方の??は長崎を通じて輸入された中?のさまざま?譜と渡日した?時代の?家の影響を大きく受け、彼らのほとんどは江蘇省と浙江省の出身の商人または群小?家だった。?西地方の?家は、彼らから、江蘇 · 浙江地方で?けられてきた吳派および四王?風を?容することができた。
田能村竹田は、このような背景から、彼の?論と??を展開した。まず、?論を見ていくために、彼の?問?を確認する必要がある。?徠?派の?者によって、?育が主導された藩?の由?館で、彼は根本的に擬古主義的な態度を備えることができた。そして、1800年代初の?西地方の旅で、?時代の袁枚(1716-1797)の性??に接した。?徠?の擬古主義と性??は、互いに?蹠点に置かれている文?、思想思潮だったが、田能村竹田は、それを折衷的に?容する面を見せた。彼の折衷的な態度は1806年に?えてもらった村??亭(1744-1819)の影響からである。つまり、田能村竹田は、折衷的な?問?を背景にして、?古の通した性?を訴えることをを重んじたのだ。
一方、田能村竹田は董其昌と彼を?いだ四王?派の?論を積極的に?容し、書卷氣など、文人?の主な成立要件を基準にして、南北宗論を?容した。ともに、四王?派が何より重んじた筆墨論を?容して、筆墨の運用を通して意を訴えることを目標にした。これは、前もって言及した袁枚の性??の影響だと結ぶことができる。そして、田能村竹田にとって、意を訴えいるというのは、自娛のためで、自娛には、?際の景色を見ながら感じた詩想と、それを表した詩?一致、そして知友との交遊を象?した?が含まれる。
田能村竹田が究極的に追求した??は自娛の??だった。そして、田能村竹田は、そのために、18世紀の?西の文人?風を?いで、?時代の江蘇 · 浙江地方の??を?容して、長年にかけて筆墨方を中心にする自家?法を完成した。
以上に、田能村竹田の??と?論は、18,19世紀の?と?西地方の??を影響を受けて、それを?いでる中、東アジアで共有された南宗文人?の普遍的な特性である詩?一致、自娛のために完成されたものだ。そして、それを完成させる過程の中で生じた?西地方の文人?壇との交遊は、彼の??が展開されることに、多くの?化を起こさせた主な要因になった。このような特?は、田能村竹田が18世紀から19世紀半ばまで盛んだ日本文人?の中で、一番''普遍的な意味の南宗文人?を完成させた?家’として生まれ?わることになった。

목차

I. 머리말
II. 19세기 초반 九州와 關西지역의 학예 경향
III. 타노무라 치쿠덴(田能村竹田)의 생애 및 교유관계
1. 藩校 由學館 재직시절(1798-1812)
1) 藩 유학자로서 활동과 詩畵 학습
2) 중국 明代 문인취향의 수용
2. 隱居 및 關西지역 文士들과 교유(1813-1825)
3. 나가사키(長崎) 여행과 淸代 회화 견문(1826-1835)
IV. 타노무라 치쿠덴(田能村竹田)의 畵論
1. 淸代 예술론의 수용
1) 袁枚 性靈說의 영향
2) 四王畵派 畵論의 수용
2. 自娛와 詩畵一致論
V. 타노무라 치쿠덴(田能村竹田)의 繪畵
1. 18세기 關西 문인화풍의 수용(1790-1812)
1) 藩校 由學館에서 회화 입문
2) 淸代 江蘇 ? 浙江지역 화풍의 영향
3) 沈周 화풍 산수화의 제작
2. 전통의 계승과 변화의 모색(1813-1825)
1) 18세기 關西 문인화풍의 계승과 필묵법의 모색
2) 1823년 교토(京都) 여행과 東山圖류 제작
3. 타노무라 치쿠덴(田能村竹田) 화풍의 완성(1826-1835)
VI. 맺음말
○ 참고문헌
○ 도판
○ 부록
○ ABSTRACT
○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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