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진혁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법사학회 법사학연구 法史學硏究 第68號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63 - 100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조선후기 형사 재판 절차에서 악형(惡刑) 퇴조의 사회적 배경에 주목한 연구이다. 숙종15년 (1689) 박태보 추국을 둘러싼 민인과 양반층, 그리고 국가의 상호작용을 검토하여 그러한 초기적 대응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17세기 국왕 숙종이 부당한 형정을 남용한 데에서 비롯된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숙종은 즉위 초기부터 주약신강설 (主弱臣强說), 후계미정 문제 등 국왕권을 둘러싼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었다. 즉위 이후 오랫동안 후사를 낳지 못하던 숙종은 숙종 14년(1688년) 희빈 장씨로부터 아들을 얻게 되고, 출생 2개월 만에 원자로 정하여 후계를 확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서인들을 축출하고 희빈 장씨에 우호적인 남인을 중심으로 정국을 재편하는 기사환국을 단행하였다.
더 나아가 숙종은 잠재적으로 원자의 정치적 역할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인현왕후도 폐출하여 후계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현왕후 폐비 강행은 서인진영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기사진신소의 소두 박태보에게 각종 불법적이고 혹독한 형문을 가하여 고문치사 시켰다.
숙종 15년(1689) 박태보 추국은 숙종의 잔혹한 형벌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었다. 숙종은 추국의 명분, 절차, 결과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위법적인 방식으로 자의적인 형정을 집행하였다. 숙종의 잔혹한 형벌로 인하여 박태보는 물고당하였고, 이에 대한 전국 각계각층의 비판이 쇄도하였다. 동시기에『박태보전』이라는 소설이 만들어져 이러한 잔혹한 장면을 재생산한 결과 ‘부당 형벌’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었다.
이제 압술형, 낙형이라는 악형은 ‘역모죄인을 심문하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무단적인 잔혹성’을 대표하는 표상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형정 운영에는 일정한 변화가 도출되었다. 악형은 자백 유도라는 효용성이 높았지만 물고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이 증가한다면 결국 중지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숙종은 조정과 사회의 비판을 고려하여 점차 악형 사용을 중지하게 되었고, 형정 운영의 절차적 정당성을 규제하는 형정절차법령올 개정해갔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제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효용보다 제도로부터 야기되는 불이익이 더 커지는 경우, 그리고 이로 인한 불이익이 국가 통치를 저해하는 경우에 해당 제도를 더 이상 국가에게 유리한 통치도구로 여기지 않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 형사사법 개혁은 18세기 영조 재위기에 정책입안자의 정치적 결단으로 일거에 성취되어진 것이 아닌, 17세기 이래 누적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대응적인 제도개량의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숙종 대 기사환국과 부당 형벌
Ⅲ. 부당 형벌 비판 여론과 형정운영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89265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