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재목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독도연구 독도연구 제34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31 - 164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독도=역사문제’라는 대한민국 정부 인식의 기원이 된 ‘변영태 성명 (1954.9.28.)’ 및 ‘변영태 구술서(1954.10.28)’에 대해서 논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변영태의 성명과 구술서가 갖는 의미를 살필 수 있었다. 1952년 1월의 ‘평화선’ 선포에 이어, 1954년 8월 독도에 등대가 설치되고 이 사실을 일본 정부에 통고하였다. 일본은 9월 24일 주일 한국대표부에 항의 표시의 「구술서」를, 이어 한국 등대 설치에 항의 및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를 제의하는 「구술서」를 전달했다. 그 사이 1954년 10월 21일자로 일본 측이 독도에 대포 설치에 항의 서한을 보내왔고, 이어서 1954년 9월 28일자 ‘외무부정보국’에서 변영태장관 명의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후 변영태 장관은 1954년 10월 28일자로, 일본 측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에 대한 입장을 외교서한으로 정리하여 보낸다.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1954년 한 해 대일 외교에서 긴박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변영태 성명이 발표되고 일명 ‘변영태구술서’가 일본측에 전달될 때까지의 1개월간 남짓(1954.9.25.-10.28)은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대일 독도 외교에서 ‘독도=역사문제’라는 인식의 기원을 만든 긴박한 시간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종래의 연구에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거나 밝히지 못했던 몇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영태성명’과 ‘변영태구술서’가 갖는 외교적, 역사적 의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의 최초의 희생물이므로 독도=역사문제임을 명확히하였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라는 문구에서 이른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이라는 명확한 워딩의 순서가 정해진 것이다. 이 점은 현재 대한민국 외무부가 견지하는 ‘독도=역사문제’,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음’,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님’이라는 입장의 기원을 마련하였다는 점을 살필 수 있었다. 둘째, 나아가 ‘변영태성명’과 ‘변영태구술서’는 대한민국의 대일 외교 전략을 규율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 및 언론의 일관 논조를 만들어주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셋째, 1954년 9월 28일자 ‘외무부정보국’에서 발표한 성명’[=‘변영태성명’]과 1954년 10월 28일자 ‘아측구술서’[=‘변영태구술서’]의 내용은 혼성되어 현재 ‘변영태성명’으로 여기저기서 유통되고 있다. 외무부, 언론 등에서 인용하는 여러 성명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그 기본 골격은 거의 동일하다. 아쉽게도 본고를 작성함에 성명의 원본을 직접 접하지 못했으나 1954년 9월 30일(목요일)자의 『동아일보』 기사 및 외무부 홈페이지에 나오는 문구를 통해 그 공통된 대략을 추정해볼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