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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재석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0집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217 - 255 (39page)
DOI
10.18496/kjhr.2023.5.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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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淳仁朝 藤原仲麻呂의 집권 시기에 추진된 신라 정벌의 추진과 칭덕천황의 重祚 직후에 나온 신공개보의 주조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신라 정벌의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를 재검토한 결과, 신라정벌 추진의 핵심은 절도사 체제의 운용에 있었으며 따라서 적어도 신라정벌을 위한 준비 체제의 존속 기간은 절도사의 존속 시기와 맥을 같이한다고 보아야 함을 지적하였다. 절도사 체제의 종식은 764년 11월이었기에 신라정벌 계획의 최종적 소멸 시기는 764년 11월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총력적인 신라 정벌의 단행은 어렵게 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나 정토 계획 자체의 유효성은 이듬해 764년 9·10월 仲麻呂의 몰락과 순인의 폐위 때까지는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공개보 주조는 ‘신공’이라는 錢文의 유통에 그 주조의 본질적 의도가 숨어 있었는데 이것은 칭덕천황이 ‘神功’·‘神護’ 등의 이미지 제고를 통해 여성천황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아울러 신공개보의 주조에는 현실의 신라 정벌 실패와 정책적 당위 사이의 괴리를 완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타협적 산물로서의 의미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신라 정벌을 핵심으로 하는 과거의 신공황후 전승의 영광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위안을 부여하고 또한 동시에 정책 실패로부터의 도피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신공개보는 錢貨로서의 화폐적 기능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성격이 강한 新錢이었으며 칭덕-道鏡 정권의 복합적인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신라정벌’ 추진 과정의 논점과 재구성
3. ‘神功開寶’의 주조와 稱德天皇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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