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수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이론학회 사회이론 사회이론 통권 제63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345 - 382 (40page)
DOI
10.37245/kjst.2023.05.63.34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에서는 1907년 4월 29일부터 약 40여 일 동안 일본 실업 시찰을 다녀온 한국인 실업가 일행들의 일정을 추적하고 시찰을 통해 받은 인상을 통해 이 시찰이 갖는 의미를 검토했다. 일본 시찰이 이루어진 1907년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했다. 첫째, 한국 금융기구에 대한 식민지적 재편이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재정고문 메카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화폐정리사업을 계기로 발생한 금융공황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1905년 하반기부터 한성공동창고회사, 한성수형조합, 농공은행, 금융조합 등을 연이어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둘째,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대한제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금융근대화가 이미 일본에 의해 좌절되거나 그 내용과 주체에 변질이 발생하고 있었다. 중앙은행 설립 시도가 좌절되거나 금융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자본 구성에서 일본인의 참여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907년은 그런 흐름이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이때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권유로 시작된 일본 실업시찰은 주로 금융기관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조 진태, 백 완혁, 한 상룡, 백 인기, 이 현주, 김 시현, 이 홍모 등 7인과 수행원 김 진옥, 홍 학균, 그리고 바바 에이이치 재정고문부 재정감사관이었다. 이들의 도쿄 시찰 일정은 시사신보가 조정했고 독점 취재했다. 일행은 도쿄에서 6월 2일까지 체재하면서 대장성, 제일은행, 일본권업은행, 도쿄수형교환소, 은행집회소, 미쓰비시은행, 15은행, 요코하마정금은행, 일본흥업은행 등 주로 금융 관련 기관들을 시찰했고, 사카타니 대장 대신, 와카쓰키 대장차관, 시부사와 제일은행 두취, 오쿠라 기하치로, 다카하시 신키치 일본권업은행 총재 등 일본의 주요 재계 인사들과 면담했다. 5월 18일부터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가서 실습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이 시찰을 통해 받은 인상은 한 상룡의 고준샤(交詢社) 연설에서 확인했다. 한 상룡은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부지런한 일본사회와 일본인의 모습, 각자 자기 직분에 충실하며 ‘와(和)’를 이루는 일본인들의 모습, 서양에 비해 부족함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발전할 수 있었던 일본 등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인상은 귀국 후에도 일제에 의한 한국경제의 식민지적 재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했고, 결국 한국에 대한 강제 병합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시찰의 배경과 일정
3. 일본 실업시찰단의 구성
4. 시찰에 대한 인상과 귀국 후의 활동
5. 맺음말
도움글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3-300-001566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