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하태규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6輯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163 - 202 (40page)

이용수

DBpia Top 5%동일한 주제분류 기준으로
최근 2년간 이용수 순으로 정렬했을 때
해당 논문이 위치하는 상위 비율을 의미합니다.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임진왜란기에 있었던 광해군의 전주에서의 분조활동의 실상과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광해군의 전주에서의 분조 활동은 임진왜란의 극심한 위기 상황이 고비를 넘기고, 명과 강화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명에 의해서 강요된 광해군의 2차 분조의 일환이었다.
광해군의 1차분조는 선조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2차 분조는 명군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고,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선조와 조선 조정에서 부득이하게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출범 시작부터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갖고 있었다.
광해군은 1593년 윤11월 19일 서울을 출발하여 12월 1일 공주에 도착하여 분조기구인 무군사를 구성한 다음, 그해 12월 15일경 전주에 도착하여 약 2개월 동안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광해군은 전주에서 분조활동을 통해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조련하고,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는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광해군 분조의 한계와 제약, 그리고 무군사를 수행하는 관료들의 작폐와 무능 등으로 당시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1594년 2월 11일 무군사를 이끌고 전주를 출발하여 홍주로 이동하여 약 6개월 동안 머물다가 그해 8월 24일 서울로 돌아와 2차 분조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홍주에서 분조활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광해군의 2차 분조는 전주에서의 활동이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명의 분조 강요와 조선 조정의 수용
Ⅲ. 광해군 분조의 성립과 전주에서의 활동
Ⅳ. 광해군의 호서 이동과 분조의 해체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3-911-001466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