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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성희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32권
발행연도
2015.5
수록면
163 - 19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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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 김윤식은 조선말에서 식민지시기에 이르는 격변의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이며 관료였다. 사상적으로는 온건개화론으로 분류되지만 그 바탕에는 도학적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학과 국가의 운명을 하나로 보아, 유학의 쇠퇴를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도서기적 입장에서 유학적 주체성을 가지고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김윤식 개화론의 바탕이 된 도학사상의 기본은 실천성을 강조하는 명덕론에 잘 나타나 있다. 즉 명덕을 행사(行事)로 보고 『대학』의 팔조목 역시 명명덕(明明德)에 속하며 지(知)와 행(行)을 포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무론이나 개화론은 어떤 명분에 치우치기보다는 실용적 측면을 중시하고 있으며, 맹목적인 개화도 무조건적인 수구(守舊)도 아닌 도학을 바탕으로 당시 우리나라에 가장 급하고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이냐에 초점이 있었다. 김윤식은 당시 가장 절실한 조선의 시무는 외교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지리적으로 치우쳐 있고, 국제정세에 어두운 조선이 당시 조선을 두고 다투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외교를 통하여 각국과 조약을 맺고 그 조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당시까지 계속되고 있던 청과의 속방 관계를 인정하고 청의 보호 아래서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는다는 전제가 달려있었다. 그러나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결과를 지켜 본 김윤식은 서구의 침탈에서 조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나라로 일본을 설정하였다. 즉 사대의 대상이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고, 김윤식에게는 그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919년 3.1 독립운동 시기에 「대일본장서」를 보내 독립을 청원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청원’이었다. 김윤식은 이 모든 것이 시무에 충실한 것이었다. 김윤식의 대청 대일 의식의 변화를 보면 민족적 자각보다는 사대적 질서가 익숙했던 전통적 지식인으로서, 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한 시무를 앞세우는 관리로서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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