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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광식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26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29 - 16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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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찰은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명성이 높은 雲門寺의 현대기의 寺格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핀 글이다. 동시에 이 글에서는 현대 운문사 사격을 고양, 정립시킨 비구니 큰스님인 眀星의 교육 내용, 이념 등을 정리하였다. 운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14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찰이다. 이런 역사에는 신라기의 원광법사가 주도한 화랑의 수행처 라는 성격과 함께 고려시대에는 선종 사찰의 명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사세가 퇴진하였다. 그러나 불교정화운동을 거치면서 1956년부터 비구니 사찰과 비구니 승가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운문사 강주, 주지를 역임한 명성은 수십여 동의 가람을 중수, 신축하면서 오늘날의 운문사를 만들었다. 즉 명성은 제5중창주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창조한 명성은 開放, 兼學, 立體的 교육을 추진하면서 비구니 교육에 매진하였다. 이는 비구니들을 인재로 양성하려는 원력에서 나온 교육의 현대화, 세계화이었다. 이런 명성의 교육철학은 불교 人文精神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성격은 명성에게 가르침을 준 師僧들의 영향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었다. 그 사승들의 은사는 박한영 이었다. 박한영은 1926∼1944년까지 서울 개운사에서 강원을 열면서 승려, 지식인 등을 가르친 대강백이었다. 때문에 그의 불교학풍, 인문정신이 명성에게까지 계승되었다. 때문에 명성의 교육철학은 역사성이 있는 불교 인문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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