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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지 (한양대학교) 김운미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무용역사기록학회 무용역사기록학 무용역사기록학 제36권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97 - 12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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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춤 장르간의 교섭양상을 포착하고, 그 교섭이 가능했던 문화적 원인과 경로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조선후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잉여로 인해 민중문화의 수요 및 예술본연의 창작 욕구가 제고되면서 장르 간의 춤 교섭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단적(端的)인 예로 성종(成宗, 재위 1470-1494)대에 창작된 <학무>는 17세기부터 각 지역 교방에서 연희되었고, 선천교방의 <항장무>는 19세기 후반의 궁중기록인 『정재무도홀기』에서도 존립했다. 또한 향기(鄕妓)가 춘 <수건춤>은 민속놀이의 과장으로 수용되었으며, 굿중패의 줄거리가 있는 <승무>는 19세기 후반에 발간 된『교방가요』의 일부 종목으로도 명시된 바 있다. 즉 궁중춤-교방춤-민속춤의 3축이 삼각대를 형성하여 일반 통행이 아닌 양방 교섭을 통해 장르별 춤의 수는 양적 팽창을 하게 되었고, 창조적 갱신을 통해서 춤의 역사적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문화적 주요원인으로는 선상기 제도의 활성화 및 중인계층의 역할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중인 계층은 18세기부터 신분상승 운동을 전개하면서 춤 문화의 관리자?향유자?행위자로 거듭난다. 각 장르의 춤과 그 춤을 추는 사람들 간의 교섭의 장(場)을 만든 주체자인 것이다. 나아가 그 문화적 경로 위에서 춤 교섭의 핵심 매개체는 교방이었고, 춤의 전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무작(舞作)을 발현 한 사람 또한 무기(舞技)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후기의 문화적 다원 현상들로 인해 18세기는 서로의 춤에 관심을 둔 교섭을 위한 준비시기이며, 19세기는 춤 교섭의 상(象)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춤 기양(技瘍)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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