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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천 (조선대학교 고전번역학과)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1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97 - 12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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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민란은 세도정치로 인한 부정부패, 그리고 삼정문란이라는 불만을 안은 채 점차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 성격의 경향을 보였다. 대외적으로는 두 차례 양요를 겪으며 서구 침략이라는 위기감에 차있었다. 이 과정에 조선은 1876년 개항을 결정하게 되면서 조정 안팎으로 이를 둘러싸고 여러 입장 차이로 분열 양상을 보인다. 그 가운데 신기선은 동도서기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실행하고자 노력한 온건 개혁가 중에 한사람이다. 신기선은 명문가 후손으로 신분의식이 강했다. 완고한 유학이념을 지닌 그가 개화파 인사들과 서응순(徐膺淳)을 만나면서 유연한 현실적 경향을 보인다. 그는 「농정신편서」에서 우월한 동도의 주관 아래 서구문물을 선별적인 수용을 주장하는 동도서기의 개화를 주장한다. 그는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유배 중에 『유학경위』를 저술한다. 그 목적은 서구를 모방하여 반인륜적으로 추진했던 갑신당의 개화와 그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농정신편서」에서 부족했던 동도서기의 이론적 근거를 보충하고자 했다. 그러나 야소교를 서구사상과 동일시하였고, 서구열강의 침탈 과정을 통해 이익만을 추구하는 비도덕적인 보았으나, 서구에 대한 구체적인 접촉과 자료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배에서 풀려나 1896년 학부대신이 되어 국한문 병용, 태양력 사용, 내각 입헌제의 반대 등 구법(舊法) 회복을 주장한다. 그는 서구제도를 모방하는 것이 동도의 전통과도 어긋날뿐더러, 부국열강을 추진하는 왕권의 누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동도 중심의 체제와 제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서구의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들의 근대시민 사회의 성장 과정이나 그 배경과 제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동아 3국이 동도를 같이하는 도덕사회라는 동질감을 보인다. 성현의 고향 중국을 세계의 표준으로 여기나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중화관도 바뀌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또한 일본을 동도서기의 성공적인 모델로 여기고 열강대열에 함께하기를 바랐지만, 이미 국가자본주의로 들어선 일본의 제국주의의 속성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외 인식이 현실과 차이를 보인 것은 그의 성장과정이나 오랜 유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서구에 대하여 정확히 판단을 할 만한 접촉이나 현지 방문이 결여되어 서구의 실체를 체감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의 미비한 자료와 일부 역사적 사건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윤리와 비윤리 사회라는 흑백논리의 고정 관념이 셋째 요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그가 주장하는 동도서기의 개화론이 현실과 괴리되어 전개되었고, 또한 점차 근대시민사회로 나아가는데 그의 대외 인식의 폭을 스스로 한계 지우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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