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트 Just에게 쓴 1798년 12월 26일 편지에서 노발리스는 그리스도교가“그 모든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세계종교에 대한 상징적인 지시 symbolische Vorzeichnung einer allgemeinen, jeder Gestalt fahigen, 노발리스의 유럽과 ‘새로운 예루살렘’ 구상?김성화 19 Weltreligion(BR, 682)”라 쓰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제시된 그리스도교의 역사 또한 단순히 그리스도교 내부의 종교적 분열 및 종파문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전제한다. 이에 프랑스 혁명 이후 분열된 유럽의 평화에 대한 대안 또한 단순히 가톨릭교회로 복귀 및 통합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만일 가톨릭교회로의 복귀가 그 대안이라면 그 종파의 통합과정에서 ‘제2의 30년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당연하며, 이는 결코 유럽의 평화에 대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에서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이전의 그리스도교 형태로서 가톨릭에 대한 예찬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그 문자에 치우친 종교가 아니라 성스러움을 직접 체험할수 있었던 신앙의 시대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유럽의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보편적 세계종교에 대한 상징적인 지시”로, 분열된 유럽의 통일이란 비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로, 또는 프로테스탄트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동시대인들이 다시금 실천하게끔 촉구하여 새로운 유럽을 만들겠다는 정치 미학적 구상으로, 이를 위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교회’의 필요성이 역설되고 있다.
유럽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상 큰 분기점은 크게 루터의 종교개혁과 “두번째 종교개혁 eine zweite Reformation”인 프랑스 혁명으로 제시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유럽 전역을 분열과 갈등관계에 교착시키며 전쟁을 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후 새 역사가 탄생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한다. 위얼링스는이를 “정신적-도덕적 갱신 geistig-moralische Erneuerung”으로 표현하며, 노발리스에게 프랑스 혁명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현상으로 해석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해방운동으로서 종교개혁이 가져온 종파, 지식과 신앙, 정통과 이단적 계시종교 간의 분열과 유럽의 전쟁도유럽의 마지막에 제시된 것처럼 유럽의 쇄신을 위한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노발리스는 의학적 의미에서 위기상황이 치료를 위한 기회가 되는 악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Vgl. Uerlings 2007, 93f). 그런 의미에서“모든 긍정적인 것이 파멸된” 상황은 “종교의 부활”을 예견한다.
부활의 시대가 왔다는 것, 그리고 종교의 소생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며 종교를완전히 몰락시키려 위협하는 사건이야말로 바로 종교의 재건에 대한 가장 강력한신호가 되었다는 것 - 이는 역사적 감수성을 가진 자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20 독일문학?제139집것이다. 진정한 무정부상태는 종교를 태어나게 하는 요소이다. 모든 긍정적인 것이 파멸되는 데서 종교는 새로운 세계의 창건자로서 그 영광스러운 머리를 든다.
Daß die Zeit der Auferstehung gekommen ist, und gerade die Begebenheiten, die gegen ihre Belebung gerichtet zu seyn schienen und ihren Untergang zu vollenden drohten, die gunstigsten Zeichen ihrer Regeneration geworden sind, dieses kann einem historischen Gemuthe gar nicht zweifelhaft bleiben. Wahrhafte Anarchie ist das Zeugungselement der Religion. Aus der Vernichtung alles Positiven hebt sie ihr glorreiches Haupt als neue Weltstifterin empor(CE, 743).
종교가 몰락한 무신론의 시대, 유물론과 개인주의로 공동체적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이자 혁명 후 군주정과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둘러싸고 전 유럽이 분열된 시대는 “진정한 무정부상태”로, 그 몰락과 상실, 분열은 유럽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는 전제가 된다. 이는 유럽의 끝부분에서 그리스도교의 부활과 “새로운 영속적인 교회 eine neue, dauerhaftere Kirche”(CE, 750)에 대한 필요성으로 제시된다.
그리스도교는 다시 생명력을 얻고 활력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국경 없는 가시적교회를 세워야 한다. 천상적인 것에 목마른 영혼 모두를 그 가슴에 품고 기꺼이과거와 미래의 중재자가 될 교회를 말이다 [......] 그 교회의 본질은 진정한 자유일것이며, 필요한 모든 개혁은 그 교회가 이끌고, 평화적이며 공식적인 국가적 절차로서 추진될 것이다.
Die Christenheit muß wieder lebendig und wirksam werden, und sich wieder ein[e] sichtbare Kirche ohne Rucksicht auf Landesgranzen bilden, die alle nach dem Ueberirdischen durstige Seelen in ihren Schooß aufnimmt und gern Vermittlerin, der alten und neuen Welt wird [...] das Wesen der Kirche wird achte Freyheit seyn, und alle nothigen Reformen werden unter der Leitung derselben, als friedliche und formliche Staatsprozesse betrieben werden(CE, 750).
여기서 ‘새로운 교회’란 정치·종교적 이상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며 궁극적으로 노발리스의 이상국가관과 종교의 의미를 연결시키고 있다. 첫째, “국경 없는 가시적 교회”란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에 언급된 “보이지 않는 교회 unsichtbare Kirche”에 대응해 노발리스가 제시한 개념이다.9) “보이지노발리스의 유럽과 ‘새로운 예루살렘’ 구상?김성화 21 않는 교회”는 “도덕적인 세계통치 하에 있는 모든 이들의 통합체”로서 경험적대상이 아니지만 지상에서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통합체인 “가시적 교회”의 원형이 된다(백종현 2011, 48). 이는 유럽에서 “국경 없는 가시적 교회”의 형태로 제시되며 범국가적 공동체로서의의미가 강조된다. 둘째, 이는 “과거와 미래의 중재자가 될 교회”로서 계몽주의와 혁명 이후 “종교적 무정부상태”에서 종교의 의미를 제시한다. 종교의 의미는 더 이상 절대군주가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성직자들이 교파를나누고 교구를 확장하여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확장하거나 교리논쟁을 하는 데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교리의 설교와 암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와 같은 맥락에서 개인 내면의 신성을 일깨워“천상적인 것”을 지상에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교회’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평화적이며 공식적인 국가적 절차”를 추진한다. 이는 초기낭만주의의 공동체의 이상과 유기체적 국가 이념이 반영되어 있다. 유기체적국가란 기계적 국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기 조직적 self-organizing이며, 자기 발생적 self-generating” 부분들로 이루어진다. 즉 각 개인의 자유롭고 능동적인 참여에서 구성되는 것이다(바이저 2011, 83). 따라서 이는 상부로부터의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사랑으로 연결된 조직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 또한 “교회”의 의미를 국가관으로 연결시키며 “[윤리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기본체제는 군주정치도, 귀족정치도, 민주정치도 아닌, 불가시적이지만 한 사람의 공동의 도덕적 아버지 아래 있는 가족”(칸트 2011, 310) 이라 본다. “유럽의 재건”에 있어 노발리스가 역설한 교황의 필요성은 이러한의미에서 인류를 “불가시적인” 신앙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한 사람의 공동의 도덕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필요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칸트는 이 체제를 “상호간 자유 의지적이고, 보편적이며 영속적인 심정적 통합체”(칸트 2011, 310)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입장은 노발리스가 독일민족에대한 기대로서 “독일적인 것은 범세계주의와 가장 강력한 개별성이 혼합된 것이다 Deutschheit ist Kosmopolitismus mit der kraftigsten Individualitaet 9) “신이 정립한 도덕법칙 하에 있는 윤리적 공동체는 교회이다. 가능한 경험의 대상이 아닌 한에서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신의 직접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세계통치 하에 있는 모든 올바른이들의 통합체라는 이념으로, 이것은 인간에 의해 창설되어야 할 모든 교회의 원형이 된다)라한다. 가시적 교회는 저 이상에 부합하는, 하나의 전체이기 위한 인간의 현실적 통일체이다.” (칸트 2011, 308) 22 독일문학?제139집gemischt”(BR, 648)고 언급한 관점과 일치하며 “국경 없는 가시적 교회”의 이념을 설명한다. 이는 분화된 이익집단으로서 국가에 속박되지 않는 박애주의의 실천과 도덕적 자발성에 따라 행동하는 자율적 개인에 대한 기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발리스가 구상한 “국경 없는 가시적 교회”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각국에서 고조되던 민족주의가 촉발시킬 수 있는 유럽의 분열을 막고 상호연대를 회복할 수 있는 평화를 위한 이상적 대안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시대”로서 중세는 종교가 제도적 집단이 되기 이전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발적으로 실천되며 상호유대감으로 개개인이 연결되어 있던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권력에 기반한 지배체제에 의해 ‘하나’를 강요하는 전체주의나 연대감 없는 개인주의로 파편화된사회계약관계로 이루어진 개인과 전체의 관계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분열된유럽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인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새로운 예루살렘”은 종파, 민족, 국가의 경계 속의 한 개인으로 분화되어 귀속집단의 이권을 생각하기 이전 모두가 ‘하나’로 연대를 이루며 종교적 신념을실천할 때 도래할 수 있다.
유럽은 오늘날 다시금 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종교란 갈등을, 전쟁을, 테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기원은 오히려인류의 공영과 평화를 위해 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던 각자의 도덕적자발성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럽은 종교, 인종에 대한 편견과차별, 국가적 이해관계로 복잡한 오늘날 종교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짚어보게끔 한다. 또 인종, 민족, 국가의 경계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타자’로 규정된존재를 재조명하며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연대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Aus historischer Sicht wird Novalis’ Spekulation uber das Mittelalter und die Christenheit in Europa, zu deren metaphysischen Implikationen bisher noch eine Auseinandersetzung aussteht, in der Forschung unter folgenden drei Ansatzen interpretiert. Der erste Ansatz ist, Europa als politische Schrift zu klassifizieren, in der die Geschichte der christlichen Religion analysiert und damit die Situation des damaligen Zeitalters diagnostiziert wird, um einen idealen politischen Entwurf vorzuschlagen. Aus dieser Position heraus ist der zweite Ansatz, dass die Geschichte des Christentums in Europa als Geistesgeschichte angesehen werden kann und nicht als rein wortliche Verherrlichung des Katholizismus bzw. als Aufruf zur Ruckkehr zum mittelalterlichen Christentum. Und der dritte Ansatz kann die Interpretation der Geschichte der Christenheit als Glaubensgeschichte beinhalten, die das ,Wissen‘ kontrastiert. ,Die Geschichte des Hasses‘, die den Hass gegen den katholischen Glauben, die Bibel, den christilichen Glauben und zuletzt die Religion selbst erreicht, entspricht der europaischen Geschichte der Spaltung und des Gegensatzes. Die damalige Auseinandersetzung und der Konflikt Europas entstammen nicht oberflachlichen politischen Machtverhaltnissen, sondern liegen darin begrundet, dass die Religion als Weltverstandnis und geistiger Wert ihr ursprungliches Wesen verloren hat. Deshalb insistiert Novalis, dass es die Religion ist, die die Krise der ,Hassgeschichte‘ uberwinden kann. ≫Die Anarchie≪ impliziert die Geburt der neuen Religion nach deren Tod und Atheismus, und das ≫Neue Jerusalem≪ kann wiederaufgebaut werden; als kosmopolitische Gesellschaft ohne Grenzen, die die wahrhafte christliche Liebe und Solidaritat der ,Vorzeit‘ und der ,mittelalterlichen Christenheit‘ beibeha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