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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원정식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7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221 - 253 (33page)
DOI
http://dx.doi.org/10.31097/KHR.2021.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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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확정하는 것은 종족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였으며영양현의 향산조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조에 대한 구전 자료의 문자화는 시조이야기를 체계화하고 신빙성과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종족을 결집하고 정체성을확립하는 핵심 과정이었는데, 거인 소신이 쓴 조사공전(1486년)과 용암현지의 열전에 수록된 조사공전(1558년)이 그 예다. 이에 향산조씨는 대부분의 종족들과 달리족보 편찬 전에 최소한 시조 조사공에 대한 두 가지의 권위 있는 전기를 가질 수있었고 그 결과 종보 편찬이나 종족 결집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조사공 이야기가 문자화되고 지방지에 수록될 수 있었던 데는 15세기 중반 복건성을 비롯한 각 지역의 반란으로 지역질서가 재편되는 속에서 국가권력과 협력하고종족화를 통한 자신들의 생존과 발전을 추구하려는 향산조씨 일족의 노력이 있었다. 조종례(20세)가 거인 소신에게 조사공(9세) 이야기의 문자화를 부탁한 것이나, 조사공이 용암현의 대표적인 선인이자 도사이며 인제라는 악습을 폐기시킨 인물임을부각시켜 용암현지의 열전에 수록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다. 그 결과 16세기후반 향산조씨는 종보 편찬 과정에 사실주의를 앞세우면서도 기초로 절충과 합의를 통해 ‘원조 조돈후, 시조 조사공’으로 시조문제를 정리하고, 지역사회의 불안정, 반란에 따른 주민들 간의 갈등, 국가질서와 민간질서의 충돌에 따른 혼란, 조씨일족 내의 분란 등을 극복하고 종족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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