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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미경 (서울여자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한국복식 제46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55 - 8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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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라남도 장성군의 청안이씨 문중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이기남(李箕南, 중종 28년 1533~선조38년 1605) 부부와 그들의 2남인 이서용(李瑞龍, 명종 12년 1557~광해군 11년 1619)의 묘에서 복식이 수습되었다. 이 복식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고,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하였다. 부자(父子)인 이기남과 이서용은 몰년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각 묘에서 수습된 복식의 종류와 형태는 차이가 크다. 속옷 상의인 한삼(汗衫)은 목판깃에 겨드랑이 삼각무가 있는 형태에서 칼깃의 무가 없고, 옆트임이있는 소형화되기 시작하는 변화를 보인다. 남자바지는 합당고(合?袴)와 개당고(開?袴)에서 사폭바지로 변화하였다. 이기남의 묘에서 액주름· 철릭· 답호· 단령이 수습되었고, 이서용 묘에서는 중치막과 단령이 수습되었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답호와 액주름은 점차 사라지고, 중치막이 등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기남 묘에서 수습된 단령과 답호는 전단후장형이나 이서용 묘에서 수습된 단령은 앞뒤길이가 같다. 이기남 묘와 이서용 묘에서 수습된 포류를 비교하면 깃너비가 좁아지고, 옷길이는 길이지고, 품은 길어지는 변화가 있다. 옷감은 이기남 묘에서는 견직물이 50% 이상 사용되었지만, 이서용 묘에서는 면직물이 60% 사용되어, 임진란 이후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들 출토복식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의 남자복식 변화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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