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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수정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23호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5 - 36 (32page)
DOI
https://doi.org/10.17300/dah.201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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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7세기 자수사는 전승과 변화라는 흐름 속에서 발전이 주도된 흥미있는 시기이다. 특히 중국 16~17세기 사회풍습과 상품 경제의 발전 아래 수의수상과 감상용 자수그림이 유입, 제작되면서 왕실과 권문가의 특권적 소용이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 중 떠들썩한 축제였던 절일행사와 이 행사에 맞는 다양한 회화 도상이 시수된 절일흉배가 명말 황실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었으며 이를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조선의 일부 지배층이 사용하였고 그 출토품이 전해지고 있다. 사실 조선도 그 이전부터 시수된 천오(天吳)라든가 사자를 벽사용으로 삼아 옷에 부착한 오랜 풍습이 전승되고 있었다. 그러나 출토품을 통해서 본 조선의 절일흉배는 이런 전래의 벽사도상이 아닌 중국풍의 민간 설화적 내용의 절일흉배였으며 잠깐 등장하는 양상이었다. 이는 중국과 달리 조상의 제사나 숭배에 치중되어 절일풍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치 못해서 중국처럼 민가까지 참여하는 큰 유행으로 연결되지 못한 점도 있다. 따라서 왕실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절일풍습이 이 시기 조선 특권사회에서 인식한 궁양(宮樣)의 한 모습이었다는 측면에서 이들 출토품의 존재 의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절일흉배를 통해 당시 자수사의 기법 변화나 회화 도상과의 상관관계를 유추하고 후대 자수그림이 가지는 사회적 이행 모습을 고찰할 수 있다. 따라서 절일흉배는 17세기라는 시대 속에 중국과의 교류사, 풍속사와 자수사적 흐름을 살펴보는데 가치 있는 유물로 상정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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