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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김은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신혜승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이화음악논집 이화음악논집 제25권 제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7 - 47 (41page)
DOI
10.17254/jemri.2021.25.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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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문화통치기의 음악사회를 고찰하였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통치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꾸었고 조선어 신문의 발행을 허용했다. 민족주의자들은 신문 및 잡지를 정치적 담론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일제에 의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의 문화운동은 특히 일본 유학생 출신의 지식인들이 주도하였고 서구 근대예술을 모델로 하는 신문화운동의 전개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예술 활동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식민지 지식인들의 문화운동에 김영환, 홍난파, 윤심덕, 한기주 등 동경 유학파 출신 음악가들의 참여도 있었다. 본고에서는 1925년의 음악회를 중심으로 1920년대의 음악사회를 고찰하였다. 1925년은 최초의 음악전문잡지 <음악계>가 출판된 해로, 홍난파는 전문음악회를 표방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회다운 음악회”는 동정음악회나 자선음악회와 같은 사회구제 성격의 음악회가 아닌 ‘음악을 위한 음악회’, 다시 말해 서구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하는 음악회였다. 그러나 1925년의 대홍수로 한반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 사건으로 일제의 동화정책의 허구와 민족차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수해구제를 위한 음악회는 경성을 넘어 전국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당국은 수해구제를 명시하는 음악회를 금지함으로써 음악회는 민족 공동체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1920년대 음악회의 또 다른 양상으로 음악무도의 유행이 있었다. 천도교 소년회에서 시작된 어린이/소년운동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건강한 신체의 단련을 표방했고 음악무도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하나의 음악현상이 되었다. 음악무도의 유행은 1925년의 음악회에도 반영되어 당대의 대표적 음악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어린이 및 소년회, 각 교회의 주일학교, 유치원 등에서 주최하는 경우가 많았다. 1925년의 음악회를 통해 문화통치기 일제의 동화주의 정책의 이면에는 배제와 차별의 이화(異化)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가 문화통치를 위해 노린 것은 민족주의 내부의 분열과 이를 통한 친일파의 양성에 있었고 음악계도 문화통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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