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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은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70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173 - 20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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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 1796년 고별사(Farewell Address in 1796)에서 해외정책에 관해 조언한 부분은 많은 외교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펠릭스 길버트(Felix Gilbert)는 고별사 후반부에서 워싱턴이 조언한 ‘외국에 취해야 할 행동의 원칙(Great rule of conduct for us, in regard to Foreign Nations in 1961)’의 기원을 To the Farewell Address: Ideas of Early American Foreign Policy에서 살펴보았다. 그는 정치와 분리된 경제정책이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국가들 사이에 법체제가 없기 때문에 동맹조약은 위험하고 외국과 조약을 맺을 때는 상업적 내용만 언급해야 한다는 17~18세기 영국 저항사상가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은 유럽의 정치적 위협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미국은 중립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자유로운 항해가 자유로운 물건을 만든다(free ships would make free goods)’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국가의 일시적 이익(the temporary interest)과 진정한 이익(the true interest)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푸펜도르프(Freiherr Samuel Pufendorf)과 볼링브룩(1st Viscount Bolingbroke)와 같은 사상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의 진정한 이익에 대해서 고민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과 구세계를 구별 짓고 유럽국가와 동맹을 맺지 않고 순수하게 상업적 관계(commercial relationship)만을 맺는 것이 미국의 진정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보았다. 반면 길버트는 평소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이해하고 강조했던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고별사의 수정과정에서 참여한 것으로 보아 고별사의 내용에는 18세기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힘의 정치를 고려한 측면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길버트는 고별사 후반부에서 워싱턴이 조언한 ‘외국에 취해야 할 행동의 원칙’의 기원을 18세기의 계몽사상과 현실주의 철학인 힘의 정치라는 논리에서 찾았다. 하지만 18세기 무렵 유럽의 세력정치 혹은 힘의 정치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계몽사상 뿐 아니라 국제법 사상(international law)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건국의 아버지들 그리고 워싱턴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제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로티우스(Hugo Grotius), 푸펜도르프, 볼프(Christian von Wolf), 바텔(Emerich de Vattel)와 같은 국제법 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이해했으며 이들의 주장을 해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력했다. 특히 전쟁은 우선적으로 피해야 하며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을 구별 짓고 교전국가 간의 전쟁행위를 제한해 정의와 선의가 존재하며 공동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제법 사상가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건국의 아버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군주정과 자신의 사회를 비교하며 미국이 더욱 인간적이고 명예로운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힘을 강조하는 18세기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살아남고 인간적이고 명예로운 원칙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중립과 비동맹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국제법 사상가들의 생각은 고별사에도 반영되었다. 또한 길버트는 워싱턴이 고별사 후반부에서 밝힌 ‘외국에 취해야 할 행동의 원칙’의 사상적 기원을 살펴본 나머지 고별사 전반부에서 논의된 사상적 기원에 대해서 살펴보지 않았다. 워싱턴은 고별사의 전반부에서 공화정체제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방법 나아가 연방(union)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신이 선택한 공화정체제가 가진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덕성(virtue)이 상실되면 시민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정치적 파당이 난립되어 공화국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공화정은 서로의 의견을 일치시켜 합의를 이끌어내야 했고 무엇보다 정의에 따라서 의견을 결정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건국의 아버지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한편 18세기말 영국 궁정파(The Court Thinkers)의 주장과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업이 공화정의 시민적 덕성을 타락으로 이끌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이후 상업과 통상을 통해 획득한 국가의 부는 공공의 정신과 공민적 덕성을 배양할 토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상업공화국(commercial republic)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유한 공화정에 대한 생각들은 워싱턴의 고별사 전반부에 강조되고 있다. 워싱턴의 고별사가 오늘날까지도 미국 연합의 결속을 굳건하게 해주고 국가 상징으로 그리고 정치적 성전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고별사에 반영된 철학과 사용된 수사가 세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대통령 중심으로 연방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각 지역의 통합과 연방의 강조,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애국심의 강조, 공화정에 대한 이상 강조, ‘외국에 대한 우리 행동의 대원칙’과 같은 수사들은 여전히 미국에서 유효한 수사들(rhetorics)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워싱턴 사후부터 오늘날까지 고별사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통합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되뇌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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