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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용국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71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59 - 19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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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希亮 반군은 경상우도 정희량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배경으로 조직되었지만 그 반군은 정희량과 아울러 호서의 李熊輔, 호남의 羅崇坤이 통솔하였다. 이는 호남과 호서 및 경상좌도의 인적 네트워크의 활용과 정변의 지역적 연대를 위한 목적이 개재되어 있었다. 정희량은 3월 19일 安陰縣 古縣에서 기병하고, 20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정희량은 반군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의병이라 칭하였으며, 이로 인해 안음현?거창현?함양군의 서리와 군교가 대거 참여하였으며, 초기에 인심도 그들의 편이었다. 정희량 난의 지역적 전개 과정에서 볼 때 3월 30일은 戰勢 전환의 결정적인 날이었다. 이러한 전세 전환에 기여한 인물이 운봉영장 孫命大와 진주진영군의 중군을 맡은 곤양군수 禹夏亨이었다. 그리고 정희량 반군의 전세 전환의 시기에 활약한 熊陽里 和同村의 延安李氏 인물들은 그 진압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들은 李昇原?李賁原?李鳳原?李震原?李一原?李長原?李遇時?李遇芳?李遇白?李遇泰?李遇光 등 이우방의 朞功之親이었다. 3월 23일 抗義殉節한 和村 李述原은 반군이 진압된 직후 4월 6일 거창 유림들이 도순무사 吳命恒에게 그 순절의 사실을 呈狀하는 것으로부터 현창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술원에 대한 현창은 揚武原從功臣 1등 녹훈, 영조의 致祭와 賜祭文, 旌閭, 司憲府執義 特贈, 祠宇 건립과 賜額, 褒忠祠의 重修, 사헌부대사헌과 이조판서의 加贈 등등의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1863년 11월의 賜諡와 1874년 3월의 延諡는 그 현창사업의 정점이었다. 이 같은 현창의 문서를 수집?보전하여 『화촌실기』 편찬의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으로 지속적인 褒忠祠의 정비를 통해 항의순절의 충절을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구체화하였다. 이술원에 대한 다양한 현창사업은 조선 후기 웅양리 연안이씨 가문의 사회적 위상의 유지와 확대에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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