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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문상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41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315 - 34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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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1930년대 교육계의 주요 이슈로 부상한 교육의 중국화가 대학의 정규교육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해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光華大學의 역사계 교수 吕思勉이 쓴 두 권의 통사의 근현대사 서술에 주목하고 그 내용을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光華大學 歷史系는 교육의 중국화라는 목표를 구현하기 시작한 1930년대 중반부터 張壽鏞 총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약진했다. 浙東學派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이 컸을 뿐만 아니라 인격교육을 중시한 총장은 당시 교육계에서 부상한 교육의 중국화 이슈에 적극 호응하여 歷史系를 적극 지원한 것이었다. 둘째, 주임으로 역사계를 이끈 吕思勉은 이때부터 근현대사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근현대사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하고자 했다. 그가 근현대사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역사를 보는 그의 관점은 이전과 달라졌다. 이전까지 그는 역사연구의 목적은 철저한 고증과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여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를 해명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지만,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역사연구의 목적은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해명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찾고 이를 통해 현 사회를 설명하고 나아가서는 미래를 전망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그는 달라진 역사관에 입각하여 근현대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서술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치사에 문화사를 결합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중국이 명말서학의 동점 이후 서양문화 수용에 능동적이지 못했던 이유를 찾고자 했고, 동시에 뒤늦게나마 중국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문화적 자원을 찾고자 했다. 그에게 문화는 비판과 계승의 대상이었다. 근현대사 서술에서 보이는 또 다른 변화는 구미세력의 중국에 대한 침략성을 강조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전보다 강도 높게 일본의 침략성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3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부상한 항일민족주의에 호응하며 이를 역사서술과 교육에 반영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변화는 신해혁명 이후 역사를 국민당 중심으로 구성한 대목이다. 국공합작이나 소련과의 연대 등에 대한 서술을 배제시킴으로써 중국의 당면한 민족주의 과제를 해결할 중심으로 국민당과 국민정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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