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주 (중원대학교)
저널정보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고전과 해석 고전과 해석 제19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09 - 140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柳麟錫(1842~1915)은 關西地方에서 學契와 書社를 통해 崇華意識을 强調擴散했다. 이는 항일의식을 제고확산하기 위한 선행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유인석은 평안도 价川郡 石溪 지역민들에게 숭화의식을 확산하고 지속화하기 위해 1902년 석계구곡을 설정했다. 아울러 숭화의식을 뇌리에 각인시켜 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歌’의 형식에 맞춰 「石溪九曲歌」를 지었다. 「石溪九曲歌」는 九曲歌라는 형식은 「武夷櫂歌」를 본받았다. 그러나 序歌를 結歌로 바꾸었으며 絶句를 歌行體로 바꿔 朱子의 「武夷櫂歌」體를 변형했다. 또한 第1曲歌부터 第9九曲歌까지 “我坐歌一曲”식으로 ‘내가 앉아 노래를 부른다’는 뜻의 歌詞를 넣었다. 이는 유인석이 「石溪九曲歌」를 노래로 부르기 위해 지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대개 구곡시나 구곡가의 경우 第1曲詩부터 제9곡시까지 9개 구곡시 제1~2구에 敍景등 曲의 명칭에 대한 설명을 담는다. 그런데 유인석은 「석계구곡가」에 도학계승의지와 승화의식을 비중 높게 담았다. 유인석의 「석계구곡가」는 조선말 일제의 침탈이 노골화해가는 시기에, 타지사람이 현지 주민에게 숭화의식을 고취앙양하기 위해 특수한 목적으로 창작한 구곡가라고 구곡문학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