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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조형디자인협회 조형디자인연구 조형디자인연구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9 - 10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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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전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다. 신라시대에 국왕은 이 사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나 신라가 멸망하자 이곳은 폐허가 되었고, 다시 사당이 재건된 것은 조선 세종이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신라 시조의 사당을 숭덕전(崇德殿)으로 부른 것은 18세기 초 경종대부터였다. 현재 이곳에는 제향 때 사용할 제기가 소장되어 있는데, 본고에서는 그중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3종 5점의 제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것들을 조선 왕실의 종묘제기와 비교하여 제작시기 및 양식적 특징을 밝혀 보았다.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숭덕전 소장 ‘보(簠)’ 1쌍은 1579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것의 형태는 단순하고 무늬가 없어 소박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현존하는 왕실 제기 중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유물은 조선시대 왕실 제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유일한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둘째, 숭덕전 소장 ‘작(爵)’ 1쌍은 명문이 없고, 형태와 무늬가 조선 후기적 양식을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의 제사를 체계화시킨 바 있다. 이에 이 유물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숭덕전 소장 ‘작(勺)’은 1792년에 제기를 만들라는 기록과 부합되어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 형태는 종묘의 용작(龍勺)과 대체로 비슷하나, 용무늬가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신라 국왕을 제사 드리는 숭덕전 제기와 조선 국왕을 종묘 제기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전자의 위상은 후자와 마찬가지여서, 양자의 제기는 종별과 수량에서 일치하였다. 다만 양식적으로 전자의 것이 후자의 것보다 소박하여 신라 왕실보다 조선 왕실을 더 우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숭덕전 소장 3종 5점의 유물은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귀중한 자료였다. 따라서 본고가 이들 유물의 문화재 지정이나, 이 분야를 연구하는데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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