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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대화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08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19 - 15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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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시바이(紙芝居)란 일본 특유의 어린이 오락거리로, 1920년대 도쿄에서 생겼다. 엿장수(飴売り)가 어린이의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고안했는데, 1930년대에는 일본 본토에서 약 6만 명의 실연자가 있고 100만 명의 어린이가 즐길 정도로유행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검열제를 실시하면서 총력전 선전수단으로활용하기 시작했다. 가미시바이는 신문, 잡지, 라디오, 영화의 빈틈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식민지와 점령지에서도 가미시바이를 활용한 교육과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식민지 조선에 가미시바이가 등장한 것은 1936~1937년으로, 관헌에 의한 교육선전을 위해 도입되었다. 이 시기 조선의 가미시바이는 시국 선전(군사사상 보급, 전쟁동원 등), 농촌교화, 간이보험 선전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많다. 일본 본토에서는 어린이 오락용으로 탄생한 것을 정책선전도구로 변용시켰지만, 조선에서는애초부터 선전 수단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총독부에서 제작하는 가미시바이 이외에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자체적으로 가미시바이를 만들어 활용하거나,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선전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아울러 총독부에서는 국어(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한 가미시바이 각본을 공모하여 우수작을 제작하고, 일본어를 이해하는 사람과 조선어만을 알아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활용하기 편리하도록 일본어와 조선어를 병기한 가미시바이를 만드는 등, 교육선전 효과를 높이고자애썼다. 조선에서의 가미시바이 제작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일본의 가미시바이 제작회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선에서 가미시바이 제작과 보급을 전문으로 하는단체도 생겨났다. 그런데 해방과 함께 가미시바이는 한반도에서 삽시간에 사라졌다. 권력기관의입장에서 보면, 라디오가 본격 보급되기 이전인 1950년대에는 선전매체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미시바이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본으로부터 강요된 매체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다시 오락매체로 돌아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해방된 한국인에게 가미시바이는 전쟁선전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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